[에세이] 개꿈이 발목을 잡아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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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1-07 12:24본문
고려가 망하고 조선에 이르러 변방 야인들과 서해·남해안 일대에 왜구들의 약탈이 심하여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변방 야인은 고려 때 윤관이 여진을 내쫓고 성채를 설치하자 공정진에 방어소를 만들었다. 조선 개국 초 이성계는 그 곳에 돌성을 쌓았다. 태종 때는 도호부를 만들고 목책을 설치하여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래도 야인들의 노략질에 육진을 설치하고 야인들의 회유를 감시했으나 그들의 약탈은 여전했다.
조정에서는 충청도 이남 3도의 토호와 향리를 뽑아서 변방의 공지를 메우려고 했다. 어느 날 경원 절제사 송희미는 수청 기생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웃으면서 변방 관리의 외로움을 달랬다. 수청 기생 가운데 송희미를 따르는 기생이 희미와 동침했다. “영감, 요사이 변방이 조용하여 영감께서 잔치를 베풀 만큼 여유가 있어 소첩도 좋습니다오.” “그렇다고 방심할 일은 아니다. 늘 조마조마하여 피가 마르는구나.” 희미는 수청 기생을 상대로 운우지정을 구수한 누룽지를 맛보듯 즐겼다.
이튿날 아침 수청 기녀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얄궂어라. 얘기를 해야 할지 어쩔지 모르겠나이다.” “무슨 말인데” 영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옵소서. 어젯밤 꿈에 야인들이 돌연히 나타나 영감 머리를 베어가더이다.“ ”뭣이야? 내 머리를 칼로 싹둑 잘라가더란 말이더냐?“ ”예에, 하온데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나이다.“ ”개꿈이로구나.“ 말은 이렇게 하여도 희미는 기분이 언짢았다. 무사히 근무기간을 채우고 서울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야인을 쳐서 공을 세워봤자 크게 도움 될 일도 없고, 또 야인을 이길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이틀 후 야인이 쳐들어왔는데 기생의 꿈이 마음에 걸려 동헌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적의 동태를 보니 약해 보이니 군대를 보내어 물리치게 하라는 부하들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좀 더 두고 볼 것이다. 놈들이 그냥 떠날 수도 있지 않느냐? 병법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 하지 않더냐?” 송희미는 기생의 꿈에 사로잡혀 옴짝 달싹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야인들은 말과 백성들 몇 백 명을 잡아가지고 사라져버렸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세종이 진노하여 송희미는 형장으로 갔다.
중종 때 정막개란 자는 천한 종이었는데 교활한 자였다. 일찍부터 박영문과 신윤무 집에 드나들며 주인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다. 박영문과 신윤무는 중종반정 때 목숨을 내놓고 참가한 인연으로 두 사람은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을 의리의 맹약을 한 사이였다.
특히 박영문은 공조판서까지 올랐으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면된 후 문신들에게 원한이 많았다. 박영문은 임금이 사냥을 나가는 날을 거사일로 잡아 난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문신들을 다 때려죽이고 고려시대 무신정권시대처럼 무신들의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신윤무는 무신이었으나 야망이 없었다. 그러나 박영문이 일을 도모한다면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었다. 그래서 이들은 때가 되면 ‘처치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막개는 오랏줄에 묶인 채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끌려가는 꿈을 꾸었다. 군기감 앞에 다다르자 자신은 준마를 타고 호위병을 데리고 달렸다. 꿈에서 깬 막개는 이 꿈을 자신이 벼슬할 꿈으로 해석하고 날이 새자 부풀려서 역모로 고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중종이 사정전 앞에 국청을 마련하여 직접 친국하였다. 정막개가 “신윤무 집의 마루 밑에서 영산군(정조의 아들)을 추대한다고 소인의 귀로 직접 들었나이다.“ 영산군은 왕실에서도 미미한 존재이고, 나이가 들어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할 형편인데 석연치 않았다고 중종은 생각했다.
박영문은 거세게 반발했으나 신윤무는 병중이라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모르는 일까지 대답하고 고개를 꺾었다. 박영문도 끝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 둡시다.”라고 해서 3족이 멸하는 벌이 내려졌다.
정막개는 일약 당상관이 입는 홍포를 입게 되었다. 그의 꿈대로 우화등선을 하듯 종3품이나 되었다. 이후 역모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져 중종은 잘못을 뉘우치고 막개의 품계를 거둬들였다. 정막개가 집 밖에 나가면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했고, 어른들은 얼굴에 침을 뱉으며 “상놈의 새끼야 똑바로 살아라.”고 했다. 결국 정막개는 밖에 나오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역시 꿈은 믿을게 못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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