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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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1-10-13 13:54본문
문이주 기자 = 태어날 때부터 말재주가 좋고, 머리가 비상했으며 게다가 맹수를 맨 손으로 때려잡는 무서운 힘을 가진 사람이 은(殷) 나라의 주왕(紂王)이다.
머리가 좋아 신하의 서툰 충고 같은 것은 조금도 효과가 없었으니, 어떤 이론을 내세워도 그의 정연한 논리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천하에 자기 이상은 없다고 큰소리치며 신하들을 무능하다고 깔아뭉개고 오로지 자기 위세만을 자랑한 주왕이다.
백성들에게는 가혹한 세금을 물렸고 온갖 사치는 다 즐겼다.
제후국 중에서 가장 인망이 높고 세력이 컸던 서백(西伯) 희창의 아들 희발은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 제왕의 위에 올라 주(周)나라를 개국한 후 가장 공이 컸던 태공망에게 제나라의 영구 땅을 다스리는 제후로 봉했다.
태공망은 동방의 영지로 가는 도중에 조금 가다가는 여관에 숙박하는 등 먼 길을 순조롭게 가지 못했다. 그것을 보자 한 여관 주인이 말했다.
‘때란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고 합니다. 큰일을 하러 나선 분 같지 않군요’. 태공망은 주인의 말을 듣자 한밤중인데도 당장 부하들에게 출발 명령을 내리고 길을 서둘러 달려가도록 했다.
날이 샐 무렵 태공망 일행이 영구 땅에 막 다달을 무렵 느닷없어 내후(萘侯)의 군사들이 습격해왔다. 내후의 군과 태공망의 군사 사이에는 공방전에 벌어져 태공망 군이 이겨 내후 군을 진압했다.
태공망은 부임한 영구 땅에서 그 고장의 풍습을 존중했고, 예절을 간소화했다. 또한 상공업을 장려했고 그 고장 특산물인 소금생산과 어업으로 산업을 크게 일으켰다.
그로부터 제나라가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수많은 백성들이 자꾸 모여들어 제나라는 차츰 대국으로 성장해 나갔다. 큰 치적을 남긴 태공망은 백세가 넘도록 살았다.
장량은 조국 한(韓)나라가 진시황의 진(秦망)나라에 망한 다음에도 노복 300명을 거느릴 정도로 부유한 명문가의 출신이다.
장량은 조국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은 아우의 장례도 치루지 않고 재산을 털어 창해군으로 찾아가서 ‘창해역사’라고 부르는 힘 센 장사 한 사람을 소개 받았다.
120근이나 나가는 철퇴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창해역사와 함께 박랑사(지금 하남 성 원양 현 동남)에 숨어 있다가 진시황이 탄 수레를 잘못 골라 다른 수레만 박살난 채 실패하고 말았다(기원 전 219년), 창해역사는 잡혀 죽고 용케 몸을 피한 장량은 그후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얻어 이 책으로 연구를 거듭했다.
그는 초나라 왕족을 찾아 가던 중 유방을 만났다.
이후 유방은 항우와 더불어 천하를 다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방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데, 그때 마다 장량의 도움을 받는다.
특히 홍문연에서 항우가 유방을 죽이려 했을 때 장량은 과거에 자신에게 신세를 졌던 항량(항우의 숙부)과의 관계를 살려 유방을 탈출시켰다.
그후 장량을 유방이 도읍을 선정할 때 낙양 데신 관중(서안)을 적극 권장하여 지금의 서안(西安)으로 도읍을 정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한 왕조가 병목 위기를 넘기고 안정된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또 유방의 한(漢)나라 개국 후 유방은 그의 장자 유영을 태자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총희 척희에게서 난 아들 여의에게 태자 자리를 넘겨주려고 마음먹었다.
유씨 집안의 일이라 간여하기를 꺼려한 장량이었지만, 이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나서기로 했다. 그는 황제 유방이 두고두고 만나기를 청했으나 만나지 못했던 은자 상산사호를 초빙하여 태자 유영을 보좌하게 함으로써 유방의 폐 세자 계획을 단념시켰다.
그러나 그는 늘 세속을 떠나 고고하게 거닐면서 유유자적으로 지내고자 했고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전원으로 물러가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현재 섬서성의 유패 현에는 장량의 묘가 남아 있다. 그의 사당 안에는 이런 저런 유물이 있는데 지지(知止)라는 글자를 새긴 바위가 눈길을 끈다. ’멈출 줄을 아는 것‘, ’그칠 줄을 아는 것‘. 이것이 ’지지(知止)‘의 뜻이기 때문이다.
다른 바위에 새겨진 ’성공불거(成功不居)‘는 공을 이루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지지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는 그 후 평생 욕심 부리지 않고 절제하며 ’지지‘의 경지를 터득한 것이다.
그가 남긴 명성은 2,000년이 넘은 오늘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고 있다. 나아갈 때를 알고 물러설 때를 알고 또 분수를 지킬 줄 아는 것이 쉬운 일 만은 아닌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