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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왕좌보다 큰 사랑

작성일 19-12-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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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주 기자

 태종 이방원은 개경(개성)에서 조정을 다스리고 있었고, 세자 양녕대군은 한경(한양)에서 조정의 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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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개성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은 한양 천도가 마무리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풍류를 즐기던 양녕은 동짓달 밤이 깊어가는 사직동의 골목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다가 어느 대갓집 대문 앞에 한 여인이 가마에서 내려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쓰개미를 팔에 걸친 젊은 여인과 살짝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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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전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에 옥비녀를 꽂은 얼굴은 하얗고 호수 같은 검은 눈은 수정같이 반짝였다. 양녕은 눈부신 여인에게 반해 수소문한 결과 중추부지사 곽선의 첩인 어리라는 장안 최고의 미인인 것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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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은 호방하고 풍류 기질을 갖고 있는 인물로 이미 세자빈을 맞았으나 악공(樂工)같은 천민을 수하로 거느리고 궐 밖 기생집을 출입하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날도 기생집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어리를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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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로 돌아온 양녕은 꿈결인 듯 어리의 얼굴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어리는 곽선의 집에서 여종으로 있다가 곽선의 눈에 띄어 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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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은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늙어서 어리는 마음을 줄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여자의 미모에 인색한 사관들이 자색이 있다고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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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동궁전에서 나온 사복 차림의 소환(어린 내시)이 내실 마당까지 들어와서 ‘세자 저하께서 수낭(수를 놓은 예쁜 비단 주머니)을 보냈다’고 소환이 공손하게 어리에게 전했다. 어리는 수낭을 받지 않으려 했으나 소환이 강제로 떠맡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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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누구신가. 장차 보위에 오르실 분이 아닌가. 여자 팔자 조롱박 팔자라고 지금은 곽선의 첩이지만 인연이 달라 세자의 여인이 된다면 장차 임금의 후궁이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운명은 세자를 만나기 전에 곽선을 만나게 됐으니 그에게 지조를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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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저하가 나를 어찌 알고 이런 선물을 보내 것 일까’ 어리는 몇 번이고 수낭을 만지면서 세자를 한 번도 본 일은 없어도 훤훤장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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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소환 김기와 곽선의 생질녀 남편 권보의 첩 계지를 어리에게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어리는 ‘곽선의 첩인데 어찌 세자 저하를 만나겠냐’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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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22세의 세자 양녕은 소환과 악공 이오방을 데리고 어리의 집에 가서 어리를 나오라 했다. 곽선은 고향 적성현(파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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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는 ‘이미 남편이 있는 몸이라 따를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했으나 일인지상만인지하의 세자를 어찌 거역 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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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왕세자라 해도 규중 부녀자를 희롱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난다. 그러나 세자는 어리를 동궁으로 데리고 와서 깊은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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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자와 어리의 사랑은 태종에게 알려져 소환, 악공 등 줄줄이 체포되었고, 어리도 궁중에서 쫓겨났다. 세자와 어리의 사랑은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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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자가 대궐을 나가 사냥을 하고 기방에 출입하는 일도 드러나서 세자의 반대세력은 이것을 확대시켜 세자 폐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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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신들의 세자 상속권이 치열한 가운데도 양녕은 침식을 잊다시피 어리를 못 잊어 그리워하자, 세자빈은 어리를 대궐로 들일 것을 친정어머니와 상의했다. 친정어머니는 어리를 여종으로 위장하여 몰래 대궐로 들여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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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이 불붙은 세자와 어리의 사랑에 아이까지 낳았다. 이것 또한 발각되어 세자빈과 세자의 아들과 딸도 대궐에서 축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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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은 어리를 축출할 때 태종에게 반발하여 크게 노여움을 샀다. 양녕은 왕세자의 자리까지 포기 할 정도로 어리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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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태종은 양녕을 세자에서 폐하고 광주로 추방했다. 셋째 충녕대군(세종)이 세자가 되어 왕위를 이어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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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을 요부라고 했고, 요부를 사랑한 남자는 폭군이라고 했던가. 양녕이 세자에서 물러난 것이 장차 세종이 되는 충녕에게 양보했다는 것이나, 광인 흉내를 냈다는 것은 야사에 불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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