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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리송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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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2-1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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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한 이후 무학으로 하여금 새로운 도읍터를 정하게 하였다.

무학이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碑峰:진흥왕 순수비 국보3호가 있는 봉우리)에 갔다가 한 개의 돌 비(碑)를 보니 ‘무학오심도차(無學誤尋到此)’라는 여섯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무학이 맥을 잘못 찾아서 여기에 온다는 뜻이며, 도선이 세운 것이다.

무학은 이 길을 바꾸어 만경대에서 정남쪽 맥을 따라 백악산 아래 이르러 세 곳의 맥이 합쳐져서 하나의 들을 이룬 것을 보고 마침내 궁궐터를 정한다.

정하고 보니 이곳은 고려말에 세운 종리처(種李處)였다. ‘종리처(오얏 심는 곳)’는 고려말 도참설이 한창 유행하고 있을 때 ‘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구절이 그 속에 있으므로 ‘(木+子)’는 이(李)씨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따라서 왕기(王氣)를 누르기 위해 미래의 도읍터가 될 만한 곳에 오얏(李)을 심어 자라면 꺾어 버리곤 했다. 무학대사가 북한산 일대를 둘러 본 끝에 찾아 낸 궁궐터가 곧 그 자리에 해당한다.

외성(外城)을 쌓으려고 하였으나 원근(遠近)을 결정하지 못하고 갑론을박하는 중에 하룻밤 사이에 많은 눈이 내렸다. 그런데 바깥쪽에는 눈이 쌓이는데도 안쪽은 연신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태조가 이상히 여겨 눈을 따라 성터를 정하도록 명하였는데, 곧 지금의 성 모양이 되었다. 오늘 날 서울의 이름이 ‘눈울타리’라는 뜻의 ‘설울’로 불리우다가 ‘서울’로 음전 되었다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궁궐터를 잡기 위해 태조가 정도전 등 개국공신을 거느리고 인왕산에 닿았을 즈음, 무학은 때를 맞추어 인왕산 정상에서 태조를 만났다.

궁궐터를 논의 할 때 무학대사는 “여기 인왕산으로 진산(鎭山)으로 삼고 백악(白岳:고려시대 개경근처의 왕의 행궁이 있던 곳)과 목멱(남산)을 좌우 용호로 삼으면 썩 좋은 궁궐터입니다.” 이는 궁궐을 동향으로 삼으란 말이다. 이에 정도전은 “예로부터 제왕은 모두 남향 궁궐터에서 통치했나이다. 궁궐이 동향이란 말은 처음이나이다.

백악을 진산으로 삼고 목멱을 안산으로 삼아 낙산이 청룡, 인왕이 백호가 되어야 합니다.“ 무학은 낙산에 비해 인왕이 드세니, 청룡 맥보다 백호 맥이 강하면 장차 장손보다 지손이 드세진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정도전은 무학대사에게 풍수나 도참은 참고삼아야지 전적으로 믿으면 낭패를 당한 법이라고 말을 가로 막았다.

공신 중에 공신 정도전의 말에 기가 죽은  무학은 입을 다물었다. 문득 신라 의명대사의 말이 떠올랐다.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는 정(鄭)씨 성을 가진 사람이 시비를 건다면 5대를 지나지 못해 왕위를 찬탈하는 화가 일어날 것이며, 200년 만에 온 나라가 분탕질 당하고 난리를 당할 것이다.’ 정도전이 말한 궁궐터가 의명대사가 예언한 쪽으로 가고 있었으나 막강한 개국공신 정도전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의명대사의 예언대로 그 뒤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200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온 나라가 초토화되고 말았다. 무학은 화를 피하려 인왕을 진산으로 삼은 동향을 권했으나 조선의 운명은 애초에 정해진 것이었을까.

조선의 27대 왕들의 계보를 보면 임금의 맏아들로 태어나 순조롭게 왕위를 계승한 이는 문종(5대), 단종(6대), 연산군(10대), 인종(12대), 현종(18대), 숙종(19대), 경종(20대)뿐이다. 이들 중 장수한 사람은 숙종 뿐이다. 반면 맏아들이 일찍 죽거나 몸이 약하거나 왕위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둘째 아들이 왕이 된 경우가 12명이다.

세종은 셋째 아들이었고, 태종은 다섯째 아들, 선조와 인조, 정조, 헌종은 왕의 손자였고, 철종은 왕의 고손자였다. 자손을 중시하고 적통을 보존하려고 애썼던 조선의 왕실, 그러나 조선의 오백 년 역사를 돌아보면 성공한 경우 보다는 실패한 경우가 훨씬 많으니, 사실일까 아닐까 아리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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