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일보

메인페이지로 가기  최종 기사편집 : 2026-07-29 15:31:35
국정일보
사이트 내 전체검색
모토


오피니언

[칼럼] 비정한 아버지
문이주 기자

페이지 정보

게시일 : 2019-04-12 16:38

본문

7731db9da6aa288790c9461d3ddff196_1555054877_168.jpg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의 국세가 나날이 쇠퇴하고 후금이 흥기하던 17세기 초엽, 조선의 자립을 도모하던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실각하면서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다.

 

 ‘폐모살제(廢母殺弟)’라는 명분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서인 일파는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채 고답적인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을 고수하다가 정묘호란에 이어 병자호란이라는 철퇴를 맞고, 그 결과 인조는 머리를 얼어붙은 땅바닥에 찧으면서 청 태종 앞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자비를 구하는 항복의식을 치렀다.

 

치욕의 순간이었다. 항복과 더불어 조선은 청나라에 막대한 양의 공물을 바치고 수많은 인질을 보내야 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볼모가 되었으며, 수십 만 명의 백성이 짐승처럼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위정자들은 반성은 커녕 실현 불가능한 복수를 꿈꾸며 ‘소중화(小中華)’라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소현세자는 인질이라는 한계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조선과 청나라 관계를 조율했으며, 농장 경영과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인 강빈의 조력을 받아 수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속환시켰다. 또한 청나라를 중심으로 새롭게 정립된 국제질서를 받아들인 그는 선교사 아담샬과 교유하며 천주교에 심취했고, 그로 소개받은 서양의 우수한 천문기술을 조선에 전파하려 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이후 관소에 머물며 한양의 동궁 생활과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청나라의 관리들은 틈틈이 두 사람을 왕실과 조정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게 했다. 황제의 사냥터에도 동행해야 했고,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의 연회에도 불러들였다. 이는 그들이 조선을 정복했다는 대외 과시용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세자는 낯선 청나라의 풍속과 의례를 익히고 주변국들의 인사들과 사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임금 인조는 소현세자의 활발한 대외 활동 자체를 자신의 권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오랜 인질 생활을 끝내고 8년 만에 귀국한 소현세자는 자신의 경륜을 펴보지도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세자가 죽으면 세손을 후사로 삼아야 하는데, 인조는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소현세자의 아들 세손까지 폐위하고 봉림대군의 아들 이연을 세손으로 봉했다. 또, 이후 소현세자의 부인 강빈은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던 중 사약을 받아 죽었고,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소현세자의 두 아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셋째아들 이석견만 살았다. 이들의 불행은 결국 인조의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명분도, 국익도 세우지 못했던 인조는 1649년(인조 27) 5월에 54세의 나이로 죽었다.

 21대 영조는 노론과 소론 사이의 치열한 정쟁 속에 즉위한 영조는 붕당의 대립 자체를 완화, 해소시키려고 탕평책을 펼쳤고, 스스로 검약 ·절제의 생활로 일관하는 한편, 재위 중에 여러 차례 금주령과 사치풍조 금단의 조치를 내리는 등 정치를 안정시킨 명군이었다.

 

그러나 영조는 세자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벌열의 움직임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으로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이는 참사를 빚었다. 영조는 자신의 행동을 곧 뉘우치고 세자에게 사도의 시호를 내렸고, 그 아들인 정조를 세손으로 삼아 왕위를 잇게 했으나, 결과적으로 자식을 죽인 비정한 부친이 되었다.


고구려의 유리왕은 시조인 동명성왕의 아들로 그에게는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자신의 장남과 차남의 목숨을 빼앗은 비정한 왕이었다.


후백제의 시조 견훤은 여러 아들 중 4남인 금강을 사랑하여 태자로 삼았다. 이에 형들인 신검, 용검, 양검이 금강을 죽인 뒤, 견훤왕을 금산사에 유폐했다. 금산사를 탈출하여 고려의 왕건에게 귀순한 견훤은 신검의 토벌을 요청한다. 후백제를 침공하는 고려군의 선봉에 선 견훤은 결국 자신이 세웠고 자신의 아들이 다스리던 후백제를 스스로의 손으로 멸망시켰다.

 천륜을 끊어서라도 유지하려는 권력과 부(富)는 내 곁에 과연 얼마나 머물러 줄까!

 

 

 


저작권자 국정일보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국정일보기자모집(서…
자라섬꽃페스티벌
가평군의회
경찰신문

국정일보

제호 : 국정일보 | 등록번호 : 서울가 00314 | |.편집인/발행인 대표회장 : 권봉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일복
등록일 : 2009년 10월 15일 | 최초 발행일자 : 2009년 10월 15일 | 주소 : [02636] 서울시 동대문구 한천로 2길 107, 9층 (장안동, 형인타워)
대표 (02)2216-0112 | 편집국 (02)2217-1137 | 광고국 (02)2217-1102 | Fax : (02)2217-1138 | e-mail : press1102@hanmail.net
본 사이트의 모든 기사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사용 및 전제를 금합니다.
Copyright© Since 2006 국정일보.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HAZONE.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