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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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3-22 12:50본문
조선의 명종(13대), 선조(14대) 때에 걸쳐 활동한 김성휘(金成煇 광산김씨 1535-1629)라는 인물이 있다. 그의 조상들이 높은 벼슬을 지냈지만 곤궁했고, 집안 여성들은 잔병이 많았다. 자신이 경제활동에 뛰어들어 가정을 꾸려가지 않으면 줄어든 농사마저 더 줄어들고 더욱 더 곤궁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생각이 비정통적인 방법으로 달성해 보아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자문자답했다. ‘학문으로 급제를 해도 별 볼 일 없는 팔자가 될 수 있다. 공연히 역모에 휘말려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 사주팔자에 별나게 재물 운이 많이 들어있고 수명도 무척 길다 하니 차라리 부자가 되는 길이나 개척하자. 예나 지금이나 부귀영화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가. 입신양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산이 있어야 한다. 보란 듯이 잘 살게 되면 결국 정승 대접도 받을 수 있고 판서 대접도 받을 것이 아닌가. 자, 책을 덮고 길거리로 나서자. 공연히 찬물 먹고 이 쑤시느니 차라리 고기 실컷 먹고 트림이나 크게 해 보자’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가 27세 되던 때에 열심히 길거리로 나가 돈을 벌고 있을 때 극성을 떨치던 대도 임꺽정이 잡혀 죽고, 선조 임금이 등극했다. 이리하여 그(김성휘)가 50세에 이르렀을 때 세상에서는 그를 갑부로 알아주게 되었다. 소년시절의 빈궁은 이미 남의 일처럼 멀어져 간 것이다.
그가 55세가 되었을 때 일본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풍신수길이란 자가 전국을 통일하고 그 늘어난 세력을 조선과 명나라로 뻗어보고자 한다는 불길한 소문이었다. 전국의 장사치들이 드나들며 온갖 소문, 풍문을 늘어놓는 통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상이 훤히 다 내다보인 것이다.
결국 그가 57세 되던 해에 난리가 나고 말았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미약한 조선은 잘 단련된 일본의 병사들과 장수들을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전국의 선비들이 들고 일어났고, 선조는 명나라에 가까운 북쪽 압록강 강변으로 피난을 갔지만 선비들과 백성들은 칼과 창 대신 삽과 괭이를 들고 왜적에 맞서 강토를 지켰다.
김성휘는 자기보다 나이가 열 몇 살 적은 왕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내우도 아니고 외환인데 임금인들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선 조상의 귀신들 앞에서 ‘피땀 흘려 벌었으니 값지게 쓰겠습니다.’라고 보고한 뒤 재산을 풀어 군량미를 준비했다.
그리고 굶고 있는 의병들과 관군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백성들의 칭송은 물론 나라에서도 칭송이 대단했다. ‘그런 갸륵한 일이 있는가. 정말 본받아야 할 사람이다.’ 하며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다. 한 계급, 한 계급 그 품계가 올라가 나중에는 정3품 형조참의에 올랐다.
그에게 벼슬이란 상징에 불과하지만 나라와 백성이 위급할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훌륭한 일을 해 낸 사람에 대한 칭송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배곯기 싫어 돈 벌이에 나섰다가 나라와 세인의 칭송과 함께 높은 벼슬도 얻고 94세 까지 장수하였다.
굶어 죽거나 못 먹어 부황(浮黃)걸려 죽느니 차라리 책을 덮고 돈을 벌자며 독한 마음으로 나섰다가 전란을 만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등급을 매기던 신분사회 속에서 명문가의 갑옷과 투구를 모조리 다 벗어 내던지고 벌거숭이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야망과 열정이 대단했을 것은 물론이고, 남다른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돈이 오는 길목에 미리 나가 지킬 줄 아는 예지와 근면을 갖추었을 것이다.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루고 그 어떤 비바람이나 흔들림에도 끄떡없었고, 그 소원을 이룬 다음에는 그 소원이 만백성에게 용기와 희망의 싹으로 돋아나기에 이른 것이다. 자신이 소속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어떤 형태로든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성실했던 것이다.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이것이 가난한 사람, 가진 사람 모두가 함께 나아갈 길이다. 우리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돈, 그 자체가 목적물이 아니라 수단이자 도구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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