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착한 마음 하늘의 보답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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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3-05 10:40본문

인현왕후의 나인 최씨는 장희빈으로 인해 폐비가가 되어 쫓겨난 인현왕후를 위해 매일 기도했다. 내일이 인현왕후의 탄생일이기에 그날따라 정성스레 만든 떡과 음식을 차려놓고 건강과 빠른 복위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장희빈이 왕비에 오른 상태에서 폐비가 된 중전을 위해 궁궐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최씨는 한밤중에 남몰래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문을 열고 숙종 임금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최씨는 방바닥에 엎드려 죽을 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들킨 일이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솔직하게 아뢰었다. “소녀는 중전(인현왕후)의 시녀로서 특별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내일이 중전의 탄생일인데, 중전께서는 서궁에 계시면서 죄인으로 자처하셔서 수라를 들지 않으시고 조석으로 드시는 것은 거친 음식뿐입니다. 내일이 탄생일인데 누가 음식을 올리겠습니까. 소녀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중전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놓았는데, 중전께 올려드릴 길이 없어 소녀는 이렇게라도 정성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숙종이 기억을 되살리니 과연 내일이 인현왕후의 생일이었다. 민씨가 쫓겨난 지 4년 당시의 실세였던 서인을 몰아내기 위해 인현왕후도 내쫓긴 했지만 중전에게 너무 한 듯 했다. 숙종은 인현왕후가 그리워 졌다. 또 주인을 잊지 않고 섬기는 최씨의 정성이 가상하여 그로부터 최씨를 가까이 하고 총애하여 태기가 있었다.
장희빈이 왕비가 되었지만 숙종의 총애는 점차 최씨에게 향하여 숙종 19년(1693)에 왕자를 낳고 그 이듬해 또 왕자를 낳았다. 장씨는 임신 중인 숙원 최씨를 잡아다가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어느 날 숙종이 잠깐 조는 사이 꿈에 신룡이 나타나 땅속에서 나오려다 나오지 못하고 가까스로 머리 뿔을 드러내고 울면서 “전하께서 속히 저를 살려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숙종이 놀라 깨어나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장희빈의 침방으로 들어가 두루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곳이 없었다. 홀연히 담장 밑을 보니 큰 독이 엎어져 있어 ‘어찌 저 독이 거꾸로 있느냐‘고 물으니 장희빈이 ’빈 독은 본래 거꾸로 세워 놓는다.’ 고 대답을 했다. 숙종이 즉시 내시에게 바로 세우게 하니 그 속에 결박당한 숙원 최씨가 피가 흘러 온 몸에 멍이 가득하고 명이 끊어지는 찰라에 있었다. 가까스로 숙종에 의해 목숨이 구해졌고 뱃속의 아이도 무사하였다.
이로부터 숙종이 장희빈의 악랄함을 알고 배척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옛 중전 인현왕후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실제로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숙종의 물음에 숙원 최씨는 인현왕후의 나인으로 있을 때 환국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7년 후인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을 때 장희빈의 음해를 숙종에게 고해바친 사람도 최씨였다.
같은 해 장희빈도 사사되고 그 자리에 숙빈 최씨와 아들 연잉군(영조)이 대신하였다. 1702년 세 번째로 인원왕후 김씨가 들어오긴 했지만 후사가 없었고, 아들 셋을 낳았지만 첫 째와 셋 째 아들은 일찍 죽어 둘째 연잉군이 조선왕조 최장수왕인 영조대왕이 된 것이다.
성경 말씀에 ‘범죄 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고 죄를 짓게 한 뱀은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벌은 일정한 대가를 치르면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저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궁궐 안에는 500-600명의 궁녀 중에서 왕의 승은은커녕 평생 왕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죽는 궁녀가 부지기수였다. 숙빈 최씨는 비록 아들이 왕이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49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지만 당쟁에 휘말리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생을 마감했다. 숙빈 최씨에게 주어진 행운은 우연이라고 하기 전에 겸손하고 착한 마음에 대하여 하늘의 보답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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