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올가미가 된 며느리감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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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5-10 13:57본문
연환계(連環計)란 계략을 실행하는 자는 상대방의 가장 취약한 점을 움켜지고 작은 것을 이용하여 상대의 역량을 견제하거나 이익 같은 것을 던져 두 세력 사이의 견제와 경쟁 관계를 조성하여 벗어날 수 없는 모순과 갈등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평왕(平王)과 소왕(昭王)시기에 음모와 아첨을 일삼는 비무극이란 자가 있었다. 비무극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간신으로 악랄한 수단과 잔인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춘추시대는 열국에서 공통된 현상은 ‘정변‘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보편화되는 시대였다. 평왕은 음모와 술수로 형인 영왕과 초왕을 제거하고 즉위했다. 평왕은 즉위 후, 오사에게 태부(太傅), 비무극을 소부(少傅:태부를 도와 태자를 이끄는 관원)에 임명했다. 그러나 비무극은 태자 건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오사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평왕은 태자 건이 결혼 할 나이가 되자 며느릿감을 물색하기 위해 비무극을 서방의 강국 진(秦)나라로 보냈다. 진나라에서는 절세의 미모를 깆춘 왕족 영(?)씨를 태자 건의 아내로 보내기로 했다. 귀국한 비무극은 평왕 앞에서 영씨의 미모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한편, 이왕이면 영씨를 평왕이 차지하고 태자에게는 다른 여자를 구해주라고 부추겼다. 호색가 평왕은 주저 없이 비무극의 권유룰 받아들여 며느리감을 자신의 처첩으로 삼았다.
이러한 미인계는 먼 훗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영감을 주어 왕윤이 초선을 이용하여 동탁과 여포를 이간하는 대목이 바로 연환계이다.
음모의 1단계를 성공시킨 비무극은 다음 단계로 눈엣가시와 같은 태자 건을 평왕에게서 떼어놓은 일을 감행 했다. 그는 평왕에게 중원의 강국인 진(晉)과 패주 자리를 놓고 다투기 위해서는 진에 가까운 성보(城父:지금의 하남성)를 화장해서 태자에게 북방 국경을 관할하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 태자의 아내감을 가로 챈 평왕의 입장에서는 늘 태자의 존재가 마음에 걸린지라 비무극의 건의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태자가 지방으로 쫓겨난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태자가 성보로 간 1년 뒤 비장의 역모카드를 평왕에게 꺼낸다. “태자 건과 오사가 성보를 거점으로 반란을 꾀한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평왕은 비무극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초나라가 그 아이 것이 될 텐데 무엇 때문에 역모를 꾀한다는 말인가?” 이에 비무극은 “태자는 왕께서 자신의 아내감을 가로챈 것에 원한 품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군대를 통솔한 채 외지에 있으니 다른 제후들과 결탁하여 머지않아 우리가 있는 수도 영으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후회막급일 것입니다.”
평왕은 태자의 아내가 될 여자를 가로챘다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비무극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평왕이 비무극의 말에 따라 태자 건과 태부 오사를 소환 하자, 태자 건은 겁을 먹고 송나라로 도주했다. 평왕은 오사와 두 아들 오상과 오자서까지 소환하였는데 오자서는 죽임을 당하리라 생각하고 국경을 넘어 도주했다. 결국 오사와 오상은 살해되었다.
비무극은 당시에 명망있는 중신 좌윤 배극완을 질투한 나머지 그 가족까지 죽였다. 동료를 살해했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아 영윤 자상을 함정에 빠뜨려 비무극 자신을 위해 칼을 휘두르게 하였다.
비무극은 영윤과 낭와 등에 의해 제거 되었지만 음모와 술수로 정적들을 해치고 태자마저 제거하는 등 초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태자 건을 해치는 과정에서 오나라로 달아난 오자서는 조국인 초나라와 평왕과 비무극에 극도의 원한을 품고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평왕의 시체를 꺼내 채찍질하는 전대미문의 보복을 행했다. 우리도 미인계의 올가미에 씌운 평왕처럼 누군가에게 발목 잡혀 허덕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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