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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관의 치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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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07-2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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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전기(25-88)는 황제의 권력이 강력하여 세습 호족들이 세력을 지배하였으나, 후기(89-189)에 들어서는 외척을 대표하는 호족들의 세력이 황제의 권력을 능가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양기(梁冀) 형제였다.


양기는 원래 일정한 직업이 없는 불한당으로 승냥이 와 같은 눈에 독수리 같은 어깨를 가졌으며, 성질 또한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8대 경종을 거쳐 11대 성종 중기(159년)에 이르러 양씨를 토멸하였다. 그 날에 양기 부부는 자살하고, 그의 일족은 노소를 막론하고 주살되었고, 양기와 관계가 깊었던 궁중 대신등 수 십 명이 연좌되어 죽음을 당하고, 관직을 삭탈당한 자가 300여 명에 달하여 한 때 조정은 공백상태에 빠지고 잠시 동안이지만 낙양이 혼란에 빠졌다.


양씨의 재산을 몰수하여 매각한 결과 무려 30억 전에 달하여 국가 1년 조세수입의 반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흉악한 호랑이 다섯 마리를 몰아내자 백성들은 축배를 들어 기뻐했으나, 다섯 마리의 이리가 나타나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다. 단초 등 다섯 사람의 환관들은 양기 일족의 토멸의 공로로 동시에 열후의 자리에 올라 도당을 규합하고 친척을 관직에 등용하는 등 강력한 환관 정권에 양기 토멸 후 환제는 8년 동안 재위하여 36세 죽기까지 오로지 환관들의 정권에 휘두르게 되자 유생들의 거센 저항이 일어나 ‘제1차 당고(黨錮)의 화(禍)‘ 2차 당고의 화로 죽임 당한 자가 1백 여 명, 금고6-7백 명, 체포 투옥된 자가 1천 명이 넘게 관직에서 해임되거나 금고처분 되었다.


영제 즉위 8년에는 조정에서 서원(西園) 가운데 서저(西邸:점포와 비슷한 것으로 돈을 받고 벼슬을 팔아 돈을 보관하는 곳)를 설치하여 벼슬을 팔았다. 값은 군수 등 녹봉 2천 석의 벼슬은 2천만 전, 4백 석 상당의 현의 장관은 좋은 지방과 나쁜 지방에 따라 액수가 달랐으며, 가난한 자는 벼슬에 오른 다음 할부로 지불하는 방법도 있었다.


흥미있는 것은 같은 호봉의 관직이라도 지방 관직이 중앙 관직 보다 갑절의 값으로 거래 되었다는 것이다. 지방 관직은 착취가 가능하지만 중앙 관서는 착취를 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 이 시대의 임기는 매우 짧았다. 짧은 임기에 본전을 회수하고 장사를 하기 위해 성급하게 굴었으며, 이에 따라 탐관오리들의 토색질에 못 이겨 밤에 도망치는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성행하였다.


빗발치듯 일어나는 비판의 여론을 탄압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거친 당고의 화가 약 20년간이나 이어지고, 뒤이어 벼슬을 돈으로 팔고 사는 세상이 되고 보니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은 더욱 첨예되어 마침내 후한 왕조 타도를 외치는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난다.


반면,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당나라 300년 기초를 다진 명군이다. 그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반대파라 할지라도 요직에 앉혔다. 적장인 장사귀와 위지경덕을 영입했고, 반대편에 섰던 위징과 설만철을 충신으로 만들었다. 이세민이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위징을 추궁했을 때 위징은 ‘내가 모셨던 주군이 내 계책을 받아들였다면 오늘의 결과가 없었을 것’이라며 태종을 면전에서 비판했다.


하지만 이세민은 위징의 능력을 높이 사서 그를 중용했다. 태종 이세민은 인재 양성과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기에 후세에 빛나는 ‘정관의 치’를 이루었다.


또한. 중국에서 태평성대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강건성대’의 시대를 연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할머니는 몽골족, 어머니는 한족,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만주족이었으나 그의 출생부터가 통합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는 신하를 중용 할 때 민족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바탕으로 뽑았다. 심지어 점령지 출신의 포로들도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 중국의 흥성기를 이끌어 냈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 충무공의 리더십은 [1.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2.용기는 두려움을 이긴다. 3.정성은 고난을 이긴다. 4. 헌신은 기적을 이룬다. 5. 공감은 열정을 키운다. 6.올바른 신념은 세월을 뛰어넘는다. 7.진심을 다하면 기회가 온다.] 를 바탕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요즘 일본의 ‘적반하장‘ 격으로 경제보복을 하려는 일본에 맞선 우리국민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그대로 발휘하는 것 같아 참으로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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