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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당쟁의 지배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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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10-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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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은 안으로는 내부적인 혼란과 더불어 바깥으로는 국제정세의 커다란 지각 변동을 겪었다. 먼저 명나라는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다. 만주지역에서는 여진족이 대두하여 선조 16년 여진족의 추장 니탕개가 조선의 변방을 침범하기도 했다. 이에 조선은 신립 장군을 파견하여 이를 물리치고 위기를 모면하였으나 이후에도 여진의 소규모 침략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나타나 서서히 여러 부족을 통일하는 형세가 되었다.

일본은 이와 달리 16세기 전반기에는 전국의 다이묘들이 할거하는 전국시대가 펼쳐졌으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통일정권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렇게 일본과 중국이 분열에서 통일시대로 진행하고 있었던데 반해 조선은 오히려 통일에서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연산군 시대부터 시작된 4대 사화를 겪으면서 지배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산군 4년에 김종직은 의제를 살해한 항우에 비유하여 세조의 왕위찬탈을 은근히 비난하는 [조의제문]을 썼다. 이것을 그의 제자인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실은 것을 계기로 일어난 무오사화‘, 연산군 10년에 그의 어머니 윤씨의 폐비사사 사건으로 일어난 갑자사화‘, 중종 14년에 조광조의 위훈삭제 사건을 계기로 ’;기묘사화‘, 이어 명종 즉위 원년에 소윤(윤원형)이 대윤(윤임 일파)을 공격하는 을사사화까지 조정에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켰다.

또 선조 때부터 시작된 당쟁은 지배체제에 혼란을 더해서 조선의 위정자들은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오로지 명나라와의 사대관계에 의지한 채 정쟁과 권력 싸움으로 힘을 쏟고 있을 때 일본의 침략을 맞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속수무책이었다. 충주탄금대전투에서 신립 장군이 이끈 군대가 패하면서 순식간 도성이 함락되고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다. 얼마 되지 않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조선의 수군이 민첩하게 대응하여 왜적의 진격로, 수송로를 차단하여 왜군은 곤경에 빠졌다. 조선의 수군이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지형지세를 잘 이용한 탁월한 전략을 들 수 있다.

명나라의 수군제독 진린은 이순신을 천지를 다스릴만한 재주를 지녔고, 하늘의 해만큼이나 큰 공이 있었다.”라고 평가하였다. 이순신과 절친한 유성룡은 [정비록]에서 순신은 말이 적고 잘 웃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용모는 수려하고 근엄한 선비와 같았으나 내면으로는 담력이 있었다. 순신은 재주는 있었으나 명이 없어 백가지의 경륜에서 한 가지도 시행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아아! 슬프고 아깝도다.”라고 하였다.

이순신 보다 5살 연상인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옥포해전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한산해전애서도 원균의 역할은 적지 안했다. 원균은 용맹한 무장이요 충신이었으나 지금까지 이순신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을 모함하고 시기 질투한 악인으로 치부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원균이 임진왜란 초기에 싸우지도 않고 도망갔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말이다. 당시 원균은 적의 기습을 받고 장수들과 병사들이 다 도망하여 무군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망한 것이 아니라 즉시 우군에 속보를 발하는 동시에 전라좌수사 이순신에 원병을 청하고 한편으로는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고 정비하여 옥포해전을 포함하여 곳곳의 싸움에서 선두에 서서 많은 공을 세웠다.

인조반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서인세력이 자신들의 정적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던 원균을 깍아 내리려고 이순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조실록]을 수정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역사는 이순신 장군을 우리 국민의 영웅으로서 추앙받는 반면, 그를 모함했다는 원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해 왔다. 그러나 역사는 한편 지극히 주관적이며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당해 왔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는 것이다.    문이주 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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