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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심 획득의 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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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4-2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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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주 기자] 유능한 지배층은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지만 무능한 지배층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

임진왜란은 지금까지 두 가지 오해가 있어 왔다. 하나는 선조 25(1592) 413일 갑자기 일본군이 부산을 공격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조선통신사의 부사였던 김성일이 일본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해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인식이다.

명종은 인순왕후 심씨에게서 이부를 얻어 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열세 살에 죽고 이후로는 후사가 없었다.

[선조실록] 총서는 명종이 재위 20(1565) 와병 중일 때 중종의 수많은 서손(庶孫) 중의 한 명인 하성군 이균(훗날 선조)을 후사로 결정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명종이 아프자 대신들이 조카 중에서 후사를 미리 선정하자고 청했고 임금이 드디어 하성군에게 의약 시중을 들라고 하고 따로 명을 내려 선비를 사부로 삼아 가르쳐 이끌도록 했다는 것이다.

반면 [명종실록]에는 명종이 하성군에게 사부를 붙여 공부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재위 20년이 아니라 21년 이었으며 그 이유도 달랐다.

성종의 손자 경양군 부자(父子)가 재산문제로 서처남(庶妻男)을 때려 죽인 사건이 발생하고 청릉수 이수하가 창기를 끼고 놀다가 충의위를 찔러 죽인 사건이 발생하자 명종은 종친이 대개 무식해 심지어 중죄까지 범하니 내가 심히 통탄한다면서 사부를 뽑아 왕손을 교육시키라고 명한 것이다.

이때 교육 대상은 하성군 뿐만 아니라 풍산도정 이종린, 하원군 이정, 전 하릉군 이인까지 네 명이었다. 끝내 자식을 얻지 못하면 이 네 명중에서 후사를 선택하려는 의도였다.

나이가 제일 어린 하성군이 불리했지만, 인순왕후의 막강한 총애라는 무기가 있었다.

명종은 끝내 후사를 얻지 못하고 재위 22(1567) 627일 병이 들어 신음을 그치지 않았고 말도 하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중종의 서손, 당시 열여섯 살의 하성군 이균은 명종의 유언도 없는 상태에서 인순왕후와 이준경의 공모로 후사로 결정되어 선조임금이 되었다.

[선조수정실록] 선조 25(1592) 413일 새벽 400여척의 적선이 부산 앞 바다에 나타나고, 14일부터 적군 도합 168천명이 파죽지세로 올라와 428일 충주에서 패전 보고가 들려오자 선조가 가장 먼저 도주하려고 했다.

대신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우승지 신잡은 팔순 노모가 있다면서 종묘의 대문 밖에서 스스로 자결할지언정 감히 전하의 뒤를 따르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선조의 파천 발언이 알려지자, 도성에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나라를 가장 먼저 포기한 인물은 다름 아닌 선조였다.

류성룡은 극구 반대했고, 도승지 이항복은 팔도가 모두 함락된다면 명나라로 가서 호소 할 수 있다고 했고, 윤두수는 지세가 험한 함경도로 가야 한다고 말했으나 선조는 곧바로 요동으로 도주했다.

백성들은 도성에 불을 지르고 국왕은 도주에 가장 큰 뜻이 있으니 조선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서 선조의 행차가 평양을 떠나온 후로는 인심이 무너져 지나는 곳마다 난민들이 곧바로 창고에 들어가 곡물을 약탈했다.‘고 전한다.

조선의 사대부는 자기희생은커녕 군역(군복무)을 합법적으로 면제 받았다. 조선은 이런 신분제도와 조세제도의 모순 때문에 백성들의 버림을 받았다. 지배층이 군대에 가지 않는 나라의 피지배층이 전쟁 때 종군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선조 256월에 평양성이 함락되었고, 조선은 곧 멸망할 것처럼 보였지만, 다음날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115척에 달하는 적선을 궤멸시켜 회생되기 시작했다.

무능한 선조의 정권에서 류성룡이 제정한 노비들도 군공을 세우면 벼슬을 주는 면천법과 토지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는 작미법, 양반도 노비들과 함께 군역에 편입시킨 속오군 제도로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오면서 조선은 바닥에서 다시 회생하기 시작했다.

선조 26(1593) 10월 선조도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전세의 역전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것은 의병들이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의 획득의 요체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제도와 관습의 개혁이다.

로마의 파비우스 가문은 어린 후계자만 남기고 전쟁터에서 모두 목숨을 바쳐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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