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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래를 위해 악역을 자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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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4-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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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주 기자] 세종 2년(1420년) 7월 10일, 상왕 태종은 부인 원경왕후 민씨가 투병하고 있는 별전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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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대비의 병이 이미 위태롭다. 전일에 점쟁이가 해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 이와 같으니 점이란 것은 진실로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라고 침통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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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午시(오전11시-1시)에 대비는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세종은 머리를 풀고 발을 벗고 거적자리에서 통곡했다. 태종도 30일 동안 흰옷과 소찬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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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백성들이 자신을 모진 남편이라고 수군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태종은 그것이 하늘이 명한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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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조선 초기에 꼭 필요한 군주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태종은 악역을 자초해야 조선이 반석위에 올라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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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아내이자 세종대왕의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는 제1차 왕좌의 난(1398년, 태조 7년), 제2차 왕좌의 난(1400년, 정조 2년)에 친정 여흥 민씨를 동원하여 승리하게 함으로써 남편 태종을 권좌에 올린 여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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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왕권국가를 추구하던 태종이 외척의 발호를 방지하기 위해 네 명의 동생을 죽이고 그로 인해 아버지까지 화병으로 죽는 등 친정이 멸문지화를 당하자 원경왕후 민씨는 울분에 찬 말년을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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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얼마나 성군이 되기를 원했는지 태종우(太宗雨)고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태종이 세상을 떠난 5월 10일에 감로수 같은 비가 새벽부터 밤까지 내렸는데, 이 비가 ‘태종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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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민간풍습을 기록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5월조에는 “태종이 임종할 때 세종에게 ‘가뭄이 극심한데 내가 죽어서도 비록 알게 된다면 이날에는 반드시 비가 오게 하리라’ 말 했는데, 훗날 그렇게 되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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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문무왕이 호국대룡이 되어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겠다고 한 비장한 애국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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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죽어서도 비를 내려주고 싶었던 태종은 살아서는 성군의 길을 걷지 못했다. 자신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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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최초 악역은 정몽주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성계는 고려 우왕 9년(1383년) 함주까지 찾아온 정도전을 만나면서 새 왕조를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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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우왕9년에 이성계 집안에서 최초로 과거에 급제하자, 이성계가 대궐 뜰에서 절하고 사례하여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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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변방 무장 출신이란 콤플랙스가 신경 쓰였는데 아들이 급제하여 다소나마 해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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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으로 정국이 어수선할 때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으로 혁명무력과 혁명사상의 결합이었다. 개국명분으로 삼은 고려 말의 문란한 토지문제 해결은 정도전의 혁명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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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 4년(1392년) 3월 명나라에 다녀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던 이성계가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 낙상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양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정몽주는 이를 역성혁파를 제거하는 하늘이 주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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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곧바로 정도전 등 역성혁파를 탄핵했고, 공양왕은 주저 없이 핵심세력을 귀향 보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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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급박한 상황에 이성계가 벽란도에 머문다는 소식에 이방원은 벽란도로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개경의 사저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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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 4년 4월 이성계가 위독하다는 소문에 정몽주가 사실 여부를 알아보러 문병을 왔다 돌아가는 길에 이방원은 가신(家臣) 조영규 등을 보내 선죽교에서 제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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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종 떼 문신 이정형이 쓴 동각잡기(東閣雜記)에는 이방원이 사실을 고백하자 이성계는 “너희들이 대신을 마음대로 죽였으니 남들이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하겠는가” 하면서 “내가 약이라도 먹고 죽고 싶다” 꾸짖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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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했기 때문에 이성계가 석 달 후 개국시조가 될 수 있었다. 이방원이 악역을 거부했다면 조선 개국은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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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피를 토하는 자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종은 “이 또한 하늘이 시켜서 한 일이지 내가 즐거워서 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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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미래의 조선을 위해 측근 공신인 처남들을 제거했고 후계자를 미리 양성하는 등 자신을 희생하여 악역을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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