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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잘난 사람들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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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3-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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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주 기자 = 이숙번은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이 두 번의 왕자의 난 때 방원을 도와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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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칠원부원군 윤자당과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윤자당의 어머니 남씨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경상도 함양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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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당이 일곱 살 때 어머니 남씨는 아들을 데리고 무당을 찾아가 운수를 물었다. “부인, 걱정 마시오. 이 아이가 귀하게 될 상이오. 허니 반드시 아우의 힘으로 귀하게 될 것이오.” “무슨 말씀이오? 과부에게 어찌 아우가 있겠소?” “곧 아우가 생길 일이 있소.” “내가 재혼이라도 한단 말이오?” “팔자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오. 두고 보시오.” 무당의 말대로 남씨는 얼마 후 이씨 집에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다. 무당의 말대로 후에 윤자당은 이숙번의 영향으로 부원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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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이 왕위에 오르니 이숙번은 자신의 공을 믿고 점점 교만해져갔다. 같은 품계일지라도 마치 하인대하 듯 하고, 나중에는 태종이 불러도 병을 핑계로 가지 않는 등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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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 안에 이숙번의 집은 규모가 궁궐 같았다. 늘 풍악 소리가 그치지 않고, 주지육림의 음식냄새가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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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뇌물로 벼슬을 청하려고 오는 선비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숙번이 조정의 요소요소에 심복을 심어두었기에 서찰을 써서 보내면 벼슬을 얻었다. 이숙번은 말굽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유로 조정에 건의하여 통행금지법을 받아내고 돈의문 통행을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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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이용한 그의 사치와 휭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조정에서는 이숙번을 탄핵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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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공신을 차마 죽일 수는 없어 장 20도를 쳐서 함양 땅으로 귀향 조치했다. 이숙번은 하루아침에 권세를 잃고 죄인의 몸으로 전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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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차차 잊혀져가는 듯 했으나 세종 때 이르러 도승지 김돈에게 순금 띠를 뇌물로 바치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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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세종이 <용비어천가>를 지으려고 선대의 일을 잘하는 신하들을 모으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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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을 받은 김돈은 이 기회에 이숙번을 즉시 추천했다. 세종은 선왕에게 죄를 지어 유배되어 있는 자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김돈은 선대왕의 일을 이숙번 만큼 잘 아는 자가 없다하여 우여곡절 끝에 한양으로 돌아왔지만, <용비어천가> 작업이 끝나고 도승지 김돈에게 이숙번을 유배지로 돌려보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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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이숙번은 도승지에게 주었던 순금 띠를 되돌려 받아 가지고 유배지로 돌아가 함양에서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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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람은 시집보낼 딸이 있어 사윗감을 골랐다. 그때 남이의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권람이 남이의 사주를 보았다. “이 사주는 반드시 젊은 나이에 요절 할 것이오.” 점쟁이는 불길한 말을 했다. 또 딸의 사주를 물어 보았다. “이 사주도 수명이 매우 짧고 자식이 없으나 복만 누리고 화는 입지 않을 것이오.” 권람은 남이를 사위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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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은 태종의 외손자로서 조선 세조대의 인물로 17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평소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지녔던 그는 함경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뛰어난 무공을 발휘하여 출셋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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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말년에 남이는 임금의 총애를 받아 구성군 이준의 뒤를 이어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 판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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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신진세력의 약진을 고까워하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대신들의 견제를 받았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등극하자마자 남이는 병조 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좌천되는 수난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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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남이는 역모를 꾀했다는 유자광의 고변으로 체포되어 능지처참 당하고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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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남이가 남긴 시 한 수는 사나이의 기상을 한껏 뽐냈다.

​백두산 돌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어졌다./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 못한다면/ 뒷세상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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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시 한 수가 자신을 옭아매는 마수가 되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야사에 따르면 훗날 유자광이 그의 역모를 고변할 때 이 한시의 3행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의 평평할 평(平) 자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쳐 모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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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조그마한 일에도 점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도 자신의 당락을 점치러 유능한 점쟁이를 찾는다고 한다. 무인의 말을 신뢰하면 거기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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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지나친 권력을 탐하려다 결국 파멸에 이르렀고, 남이는 모함으로 말미암아 멸문지화를 당했다. 이런 것을 거울삼아 감당할 욕심으로 자신을 지키고, 모함 당할 빌미는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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