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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가 앞장 설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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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7-1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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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발 드 그라스 성당에는 6.25전쟁 영웅 랄프 몽클라드(본명 라울마그랭베르느레) 장군의 묘가 있다. 묘비에는 '해방의 동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1.2차 세계대전에서 여러공을 세운 몽클라드 장군은 6.25전쟁 발발 시점에는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상태였다. 그는 장군(중장)이 대대를 지휘한다는 것이 관례상 허용되지 않아 중령으로 계급을 깍아 참전했다.


그가 지휘한 프랑스 대대는 1951년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공세를 막아냈고 이는 서울의 재탈환의 계기가 됐다. 1964년 6월 작고한 몽클라르의 장례식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골이 주관했다. 제복을 입은 대통령과 국방장관.보훈처장 등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후배 군인들이 그의 관을 운구했다.


'겨을전쟁(1393-1940년)'에서 소련을 폐퇴시키고 핀란드의 공산화를 막은 핀란드의 전쟁 영웅 칼 구스타브 만네르헤임이 1951년 세상을 떠나자 핀란드는 국장으로 그의 장례를 치렀고.헬싱키에 그를 기리는 박물관을 세웠다. 그가 한때 핀란드를 지배했던 적국 러시아의 장군까지 지냈다는 것이 영웅을 기리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1967년 이스라엘의 대(對)아랍 6일 전쟁을 이스라엘의 압도적 승리로 이끈 모세 다얀 장군의 1981년 장례식엔 메나헴버긴 총라 등 정·관계 인사들이 출동했다. 다얀 장군은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의 공적(公敵)이었지만, 이스라엘엔 둘도 없는 애국자였다.


2차 대전의 분수령이 된 이집트 알라메인 전투에서 독일군을 대파한 영국 육군 원수 몽고메리 장군의 장레식은 1976년 영국군 군장(軍葬)으로 치러졌고.1980년 그의 동상은 국방성 앞에 세워졌다.


1964년 세상을 떠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장례식은 시민 10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장으로 거행됐고.1945년 독일에서 작고한 로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의 장례식에는 프랑스 벨기에 등 8국 사절과 유럽 주둔 최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다.


2018년 9월 엄수된 미국의 전쟁 영웅 존 매케인 (공화) 상원의원의 장례식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추도사를 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숭고한 것들의 표상인 애국자"라고 했고, 공화당의 조지 W부시 전 대통령은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그가 애국자란 점을 항상 인정했다"고 했다. 미국은 전쟁 영웅들의 이름을 항공모함, 탱크 등에 붙이는 방식으로 그들을 예우한다.


지난 10일 별세한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에 대한 각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6.25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백장군은 6.25때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미군에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로 통했다. 전후엔 한미 안보 동맹의 상징 역활을 해왔다.


그런 백장군의 죽음을 맞아 주한 미국대사와 주한 미군사령관은 조문과 추도 성명을 통해 애도했다. 미 태평양사령관 출신인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2018년 11월 백장군의 백수(白壽) 행사에서 휠체어를 탄 백장군을 무릎을 끓은 채 맞으며 예를 다했다. 지난 11일 백장군 빈소를 찾은 해리스 대사는 당시 장면을 찍은 품에서 꺼내며 고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동맹국 미국에서도 애도가 잇따랐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한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백선엽과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고 했다. NSC는 공식 소설미디어 계정에 '부산에서 판문점까지.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의 전시 회고록'이란 제목의 백장군 영문 회고록 표지 사진도 올렸다.
미국 국무부도 14일(현지시간) 고(故) 백선엽 장군이 생전 한미 동맹 구축에 기여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국무부는 이날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은 백선엽 장군 별세와 관련해 한국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서 그가 한국전쟁에서 조국에 한 봉사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한 싸움의 상징"이라며 "미국과 한국은 오늘날에도 이러한 가치를 계속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외교관이자 정치인으로서 백 장군은 탁월함으로 나라를 섬겼으며 한미 동맹의 구축을 도왔다"며 "우리가 공유하는 희생의 정신 속에 그의 봉사에 깊은 조의와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 주한 미군사령관들도 "백장군은 미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의 아버지" "한미 동맹을 강화한 진정한 영웅" "세계의 위대한 군사 지도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백장군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에서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라"며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 여명의 총공격을 막아냈다. 풍전등화의 당시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 무너졌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6.25전쟁을 70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지금도 꿈에서 지하에 있는 부하들과 전투를 한다고 말했다". 13일 장마비가 내리치는 데도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6.25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의 시민 분향소에는 추모객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분향소는 정부가 아니라 청년단체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가 앞장서고 예비역단체 등이 힘을 모아 차린 것이다. "정부가 안하니까 우리라도 (백장군을) 영웅으로 예우 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지방에도 향군을 위시해 10일 부터 백장군의 시민분향소가 이어졌다.


북한이 1950년 6.25일 일요일. 새벽. 우리군은 외박나간 틈에 기습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남한 적화야욕은 지금도 끊임없다.


당시 백장군은 낙동강 최후 방어선에서 "내가 앞장 설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명의 총공격을 격퇴했다. 백장군의 전공(戰功)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것이다.


                                                                                    이  도  근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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