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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겁하고 간사한 통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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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8-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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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주 기자 =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조정은 삼도순변사 신립에게 저지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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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은 그달 28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패전했는데, 이날 보고에는 거리가 한순간에 텅 비어 도성을 지키려 해도 이미 사람이 없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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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소식에 놀란 선조가 파천 이야기를 꺼내고, 신하들은 세자 건저 문제를 다시 꺼내고 밤이 늦어 광해가 세자로 책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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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6월 평안도 영변까지 도주한 선조는 세자에게 조정을 둘로 나누어 이끌라고 명하고 자신은 다시 북으로 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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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는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를 누비며 의병을 모집하고 전투를 독려하며 민심을 수습했다. 한편,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러 갔던 임해군과 순화군이 회령에서 조선 백성 국경인 등에게 붙잡혀 일본 진영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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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 적진을 누비고 다닐 때 선조는 “나는 살아서 망국의 임금이니 죽어서 이역의 귀신이 되려한다. 부자(父子)가 서로 떨어져 만날 기회조차 없구나” 라는 편지를 광해군에게 보내 위로하는 한편, 명나라에 세자 책봉을 주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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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잇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명나라는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봉 승인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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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세종, 세조, 성종 등 적장자가 아닌 왕자의 왕위 승습을 명나라가 거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원군(援軍) 파견을 계기로 과거의 형식적 조공 외교관계를 실질적 지배 체제로 바꾸려는 음모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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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신종은 사신 윤근수를 통해 “황제가 조선국 광해군에게 칙유(勅諭)한다” 라는 국서를 통해 “광해군은 영발한 청년이어서 신민이 복종한다“ 면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맡아 주관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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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세자 책봉을 거부한 것은 선조와 광해군 사이의 이간을 책동하려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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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자주 선위 소동을 벌여 신하들의 충성심을 확인했고, 그때마다 광해군은 왕위를 극구 사양하는 거조를 취해 부왕을 막아낼 의사가 없음을 천명해야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선조의 마음은 더욱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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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인 광해군의 왕위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안으로는 적자 계승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선조와 권력의 독점을 원하는 소북파(小北派)가 흔들고, 밖으로는 원군 파견을 계기로 그간의 형식적 조공관계를 실질적 지배관계로 전환하려는 명나라가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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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33년(1600년)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2년 후 김제남의 딸을 계비로 맞아 들였다. 그리고 선조39년 3월에 인목왕후가 영창대군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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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승통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선조는 광해군 대신 강보에 싸인 어린 적자에게 자꾸 눈길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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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백성들에게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졌던 임해군은 선조35년(1602년) 소충한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그 노복들이 백성들의 재산을 수없이 빼앗아 원성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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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명에서는 세자 책봉을 거부하고 선조도 적자 영창대군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갓난아이에게 줄을 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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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대군이 태어난 후 광해군이 선조를 문안하면 “명나라의 책봉도 받지 못했는데 어찌 세자 행세를 하는가? 다음부터는 문안하지 말아라” 면서 꾸짖어 광해군이 땅에 엎드려 피를 토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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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조는 영창대군이 태어난 이듬해(1607년) 3월부터 병석에 누워 재위 41년(1608년) 2월 1일 57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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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사망하자 유영경은 인목왕후를 찾아가 영창대군을 즉위시키고 수렴청정을 종용했으나, 인목왕후는 16년간이나 세자 자리에 있었던 서른 두 살의 세자를 제치고 두 살짜리 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다고 판단한 선조의 유서를 공개하고 왕위를 광해군에게 계승하고 영창대군을 부탁했다.

광해군은 임해대군과 영창대군을 죽였다. 결국 어린 영창대군을 위험에 빠뜨린 인물은 선조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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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선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광해군의 운명은 예측 불허였을 것이다. 왕조국가에서는 세자책봉이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정치 일정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은 사회안정의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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