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80석의 압승과 실망스러운 ‘반쪽’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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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6-14 14:06본문
21대 국회가 지난 5일 국회법이 정한 시한 내에 정시 개원을 했지만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집단 퇴장하면서 ‘반쪽’ 개원으로 끝났다.
21대 국회 협치의 시험대로 불렸던 원 구성 협상의 중간 성적표가 반쪽 개원이라니 매우 실망스럽다. 이날 개원은 외형상으론 첫 임시회 일정을 명문화한 1988년 국회법 개정 이후 처음 시한을 지킨 사례다.
하지만 통합당이 본회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곧바로 퇴장하면서 빛이 바랬다. 결국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상희 국회부의장 선출은 177석의 더불어민주당과 16석의 소수정당ㆍ무소속 의원만 참여한 채 진행됐다.
21대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싼 여야 힘 겨루기 와중에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할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법사위와 예결위원장을 어느 당이 차지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압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과한 발언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 지도부까지 공식적으로 언급할 정도이니 단순히 여론을 떠보기 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이러다가 여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행여 그런 일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국민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당의 압박은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에 이해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난 극복을 위해 추진 중인 제3차 추경의 조속한 국회통과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지난 25일 재정전략회의에서 전시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재정 역량을 총동원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문도 있었다. 고용·사회안전망 강화나 소상공인 및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수출입 활성화, 한국판 뉴딜 조기 착수 등 어느 하나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
민주당은 그래서 늦어도 6월 중으로 추경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원 구성을 놓고 허비할 시간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18개 상임위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68석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이를 넘어 177석이나 된다. 이해찬 대표는 20대 국회의 파행을 거론하면서 21대 국회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에서 국민들이 다수의 의석을 줬다고 했다. 여차하면 상임위원장 독식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역대 국회 원 구성 협상을 보면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타협의 묘를 발휘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21대 전반기 원 구성은 종전처럼 시간을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민주당의 대승적 자세가 요구된다. 힘을 사용하고픈 유혹에서 벗어나야 원 구성이 순조로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통합당도 지나친 자리다툼이나 지연전술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점을 인식하고 원 구성 협상에 임하기 바란다. 민주당은 이날 개원을 ‘준법 국회의 신호탄’‘일하는 국회의 출발점’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야당이 개원을 원 구성 협상의 볼모로 삼아온 낡은 관행을 청산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야당 없이 강행한 반쪽 개원이 해법일 수는 없다. 오히려 야당을 자극해 상임위원장 선출이 더 늦어질까 걱정이다. 연일 계속되는 강공이 177석 거대 여당의 오만과 독주로 비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통합당도 법사위원장은 제1야당이 가져간 게 관례였고 민주당이 야당일 때도 마찬가지였다는 논리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야당 법사위원장이 입법의 발목을 잡았던 비효율을 개선할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제1야당이 법사위를 가져가되 체계ㆍ자구 심사권한은 국회 법제실에 넘기거나 법사위 심사 기간에 제한을 두는 방안 등을 검토할 만하다.
제1야당을 제외한 단독 개원은 1967년 이후 53년 만이다. 여야의 정치력이 민주화 이전으로 후퇴했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 상임위 몇 개 더 가져가겠다고 싸우다 반쪽 개원 사태를 맞았다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반쪽 개원이 파행 장기화로 이어지느냐다. 혹시라도 민주당이 법정시한을 명분 삼아 일방적으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생각이라면 접어야 한다. 여당이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면 상생과 협치는 깨질 수밖에 없다.
야당도 무조건 반대만 해선 안 된다. 21대 국회가 이제 막 첫발을 떼고 있다. 지금은 여야가 협상과 타협, 조정을 통해 보다 생산적으로 의회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180석의 압승은 악마의 손짓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최 규 환 : 경북주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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