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코로나 지친 국민에 감동 세례
경북주재 본부장 : 최 규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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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10-19 14:16본문

‘나훈아 열풍’2020년 추석 하루 전. 즐거워야 할 명절임에도 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함을 숨길 수 없던 가족들이 TV 앞에 모여 앉았다.
그때 나훈아가 등장했다. 일흔셋이라는 나이와는 무관하게 20대의 젊은 패션 감각을 선보이며. 그날 나훈아는 하루에도 몇 명씩 신인가수가 생겨나는 정글 같은 한국 대중가요계에서 50년 이상 가장 높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단박에 실감하게 해줬다.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그의 노래 수십 곡은 옆에 앉은 어머니의 주름살을 물기 어린 눈으로 돌아보게 했고, 부모 곁으로 귀향하지 못한 자식들의 등을 따스하게 쓰다듬었다. 이걸 ‘위무’ 외에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노래만이 아니었다.
공연의 사이사이 나훈아가 던진 말들은 정치적 허언(虛言)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선물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무대 매너와 가창력도 여전했지만 쇼 중간중간 한 말이 큰 화제가 됐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느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이 지켰다. 여러분이 세계 1등 국민이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같은 말이었다. 인터넷에는 “속이 시원하다” “하고 싶은 말 대신 다 해줬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나훈아가 정확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발언을 절대로 편집하지 못하게 했다는 걸 보면 분명 작심하고 한 말일 게다. 화병 걸린 국민은 나훈아라는 수퍼스타와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 같아 고맙고 통쾌하다.
노태우 정권 시절 여당 고위 당직자가 나훈아를 총선에 출마시키려고 접촉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치를 좀 하셔야겠습니다”라고 하니 나훈아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물어봅시다. ‘울긴 왜 울어’를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잘 부릅니까?” 저쪽에서 “그거야 나 선생이 제일 잘 부르죠” 하자 나훈아가 대꾸했다.
“그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그렇게 나훈아 영입은 무산됐다. 나훈아는 무대에서 몸을 배배 꼬거나 이를 드러내고 웃거나 관객에게 윙크하며 노래한다. 그 덕분에 ‘느끼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처럼 자기 주장이 강하고 그것을 관철할 실력을 보유한 뮤지션도 드물다.
그는 한평생 자신의 음악을 ‘뽕짝’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고 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한 우리 민족 피에 뽕짝이 흐른다고 했다.
삼성이 이건희 회장 생일에 나훈아에게 와서 노래해 달라고 했을 때 그가 거절하며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나는 대중예술가요.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합니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사세요.” 그는 1996년 일본 공연에서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즉석 가사로 “독도는 우리 땅”을 외쳤다.
이후 일본 우익 세력으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때리 직일려면 직이삐라캐라”고 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훈아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거침없는 어법과 행동으로 수십 년 시종했다.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재벌 앞에서의 단독 콘서트를 “내 공연을 보려면 공연장으로 표 사서 들어오면 된다”며 단칼에 거절했고, 오해받는 후배 여배우를 위해 기자회견 탁자 위에서 허리띠를 풀겠다고 일갈했으며, 자신의 얼굴을 보기 열망하는 가난한 관객들을 배려해 입장권 가격을 낮췄다.
공연 다음날부터 며칠째 인터넷 공간이 ‘대한민국 어게인’ ‘테스형’ ‘나훈아 발언’ 등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감동과 위무를 받은 사람들이 그걸 선물한 대중예술가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게 부러워서였을까? 정치인들도 한가위에 불어닥친 ‘나훈아 열풍’에 주목하며 숟가락 얹기에 나서고 있다.
정치인 SNS가 연일 ‘나훈아’로 도배 중이다. 여야가 따로 없다. 앞서 말했듯 그들의 지지기반 역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대중에게 감동과 위무를 줄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닐까?
그렇게만 된다면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