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애지중지 한 많은 터럭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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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10-19 14:11본문
본래 우리네 풍습은 다발위상(多髮爲上)이었고, 신체발부(身體髮膚)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고 손톱과 발톱, 머리털까지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효도의 으뜸이라고 했다.
터럭존대사상은 대단해서 같은 나이라도 털 많은 녀석이 형님이었다. 그래서 수염을 아꼈고 상투는 행여 다칠세라 애지중지 옹위했다.
그런데 수백 년 이래 이렇게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던 터럭,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이 1895년 11월 15일 내렸다.
살아서 터럭 자랑으로 한몫하고, 죽어서 무덤 덕분에 한몫을 하는 법인데, 중들은 터럭도 무덤도 없으니 인생도 아니라고 아우성이다.
한많은 단발령 때문에 1896년 전국에서 유생들이 앞장선 대모대가 20만 명이 넘었다.
친일내각이었던 총리대신 김홍집 정부는 개화 백성을 만든다고 단발령을 내렸다.
1895년 민비시해사건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격앙되어 들썩거리는 판에 상투를 자르라는 강제명령이 내리자 의병들의 항거는 치열하게 일어났다.
일본공사가 왕을 협박하여 조속히 머리를 깎으라고 하였으나 왕은 민비의 장사를 치른 뒤에 깎겠노라 하니, 유길준과 조희연 등이 일본군을 끌어다가 궁을 포위하고 머리를 깎지 않는 자는 죽이겠다고 하니 고종은 탄식을 하며 정병하를 돌아보고 “경이 짐의 머리를 깎으라” 하니 정병하는 가위로 왕의 머리를 깎았으며, 유길준은 황태자의 머리를 깎았다.
김홍집 내각은 단발령 의병을 진압하지 않을 수없었고, 나중에는 출동병력이 모자라서 왕궁 수호병 까지 강원도 지방으로 내려 보냈다.
그 때 이완용 등은 고종황제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모셔 내려오는 아관파천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단발령 총리대신 김홍집은 하루아침에 종로 거리로 끌려나와 민중들에게 맞아 죽고, 농상공부대신 정병하도 맞아 죽었고, 대신 어윤중도 어사리에서 맞아 죽었고, 대신 유길준도 진고개 왜인촌으로 도망쳤다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서울 4대문 밖에는 가위든 순검을 세워 놓고 출입하는 백성의 상투를 자르자, 백성들은 상투가 잘릴까봐 출입을 삼갔던 것이다.
시장을 따라 떠도는 장사꾼조차 상투가 잘릴까봐 폐업을 하니 전국 곳곳에서 장날이 되어도 장이 서지 못해 출입이 뚝 끊겼다.
서양인들은 장이 열려야 연료, 광목, 석유 등 팔아먹게 될 텐데 장이 서지 못하자, ‘장사를 못해 먹겠다고 단발령을 철회하라‘고 고양이 쥐 생각하듯 외교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멋쟁이를 대표하는 양복, 넥타이, 뾰쪽구두, 쇠똥머리, 몽당치마 등이 유행하는 적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하이칼라 바람이 1920년대에 유행했다.
하이칼라 양복쟁이가 상투를 꽂고 넥타이를 맬 수는 없는 일이니 상투를 자르고 하이칼라 머리를 해야 했다.
단발령이 내리기 전까지는 상투란 우리나라 의관풍속의 원점이요 이런 풍속은 곧 그 나라의 국풍이요 국풍은 바로 국법이었다.
상투라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의관의 시발점이 되어서 외국 사람이 한국인의 표준이 무엇이냐고 하면 서슴없이 상투라고 했었다.
효도와 가문의상징인 상투, 성인의식의 상투였기에 대단한 존대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상투 튼 사람은 보기가 어렵다. 과연 신체발부 수지부모가 효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성서에 나오는 효도에 관한 말씀은 수없이 많다. 출애굽기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말씀은 십계명 제5계명에 나오는 말씀이다. 십계명 제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부모님에게도 효도하게 된다.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 인간은 사실 하나님도 올바로 섬길 수 없다.’는 뜻이다.
정통 기독교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잘 믿을수록 부모님께 더 효도해야한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부모님께 불효하는 자식은 믿음이 어리거나 잘못된 믿음 둘 중에 하나이다.
우리나라 신교육은 1900년대 후반에 본격화 되었다. 만약 그 신교육과 머리털 수난을 함께 실시하지 않았던들 신교육은 더 일찍 보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교육의 보급 요람인 신식 학교를 가자면 먼저 머리를 깎아야 했었기에 백성들로 많은 저항을 받았던 것이다. 머리 깎기가 아니었다면 보다 더 이른 시일 안에 적극적으로 신교육은 실시되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