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헌이면 역사인가”… ‘환단고기’ 논란이 던진 위험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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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2일 정부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을 거론하며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고 반문한 장면에서 튀었다. 유튜브
국정일보 김성연 기자 = ‘환단고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책의 힘이라기보다, 우리가 “역사”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는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논란의 불씨는 2025년 12월 12일 정부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을 거론하며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고 반문한 장면에서 튀었다. “사료를 중심으로 한다”는 답변에 되돌아온 “문헌”이라는 말은 그럴듯했지만, 그 순간 중요한 구분 하나가 지워졌다.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텍스트가 역사적 사실을 담보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환단고기의 ‘오류’는 단순히 내용이 과장됐다는 차원이 아니다. 사료로 쓰기 어려운 구조적 결함이 반복해서 지적돼 왔다.
첫째, 출처와 전승 경로가 검증되지 않는다. 책은 1979년 이유립이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11년 계연수가 여러 책을 묶어 편찬·간행했다는 서사를 붙였지만, 그 ‘1911년 간행본’의 실물 판본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 약점으로 꼽힌다. 둘째, 책 내부 서술 자체가 시대 표기부터 흔들린다. 예컨대 범례에 ‘광무 15년(1911년으로 추정)’ 식의 표기가 등장하는데, 광무 연호는 실제로 1907년까지 사용된 것으로 정리돼 있어 문헌 내부의 연호 체계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교차검증의 부재다. 기원전 수천 년부터 고려까지를 포괄하는 ‘초장기 서사’라면 다른 사료·기록·유물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주류 연구는 그런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본다. ‘국가’ ‘문화’ ‘인류’ 같은 근대적 개념어가 근대적 의미로 쓰였다는 점도 후대 제작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반복 언급된다.
그런데도 환단고기가 정치의 언저리에서 되살아나는 이유는, 이 책이 “팩트”라서가 아니라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서사가 정체성의 결핍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사람들은 증거보다 ‘기분 좋은 확신’을 먼저 붙든다. 문제는 권력의 언어가 그 확신에 공적 권위를 덧칠하는 순간이다. 이번 논란에서 역사·고고학 분야 48개 학회가 공동 성명을 내 “사이비 역사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고 요구한 건, 특정 책을 두고 학술 토론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국가가 검증 기준을 흐리면 사회 전체의 사실 감각이 무너진다”는 경고에 가깝다.
이재명 대통령 발언의 ‘오류’는 “환단고기를 믿는다/안 믿는다”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오류는 질문의 프레임에 있다. “문헌이니까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지 않나”라는 취지 자체는 학문 일반론으로 들리지만, 역사학에서 ‘연구 대상’은 곧바로 ‘사료 가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위서·가짜 문서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연구는 “사실을 복원”하기보다 “왜 이런 텍스트가 만들어졌고 어떻게 소비됐는지”를 밝히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 최고권력이 “문헌 아니냐”는 형태로 던진 질문은, 그 미묘한 학문적 구분을 공론장에서 통째로 생략해 버렸다. 그 결과는 예측 가능했다. 야당은 “대통령이 위서를 공적 무대에 올렸다”고 공격했고, 대통령실은 “동의하거나 연구·검토를 지시한 게 아니다”라고 수습에 나섰다.
지금 필요한 건 누가 더 ‘애국적인 역사’를 말하느냐가 아니다. 국가가 공적 영역에서 지식과 사실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차, 즉 “검증의 문법”이다. 대통령이 고대사 연구를 주문하고 싶었다면, ‘환단고기’ 같은 상징성이 큰 위서를 호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 왜곡과 사료 기반 연구 역량, 고고학·문헌학의 인프라, 대중 역사교육의 신뢰 회복을 묻는 방식이었어야 했다. 논쟁을 촉발한 질문이 남긴 교훈은 단순하다. 문헌은 많다. 하지만 역사는, 검증된 문헌에서만 시작된다.
국정일보 [ 김성연 기자 ] skyksy3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