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일보

메인페이지로 가기  최종 기사편집 : 2026-07-28 20:50:36
국정일보
사이트 내 전체검색
모토


종교

[기독교] 수가성 여인의 변화

페이지 정보

게시일 : 2022-09-15 22:50

본문

1926dd08fe70534073650d9fda7109f8_1663250169_5582.jpg
 
▲ 영종도 미시안 해변 일몰의 사진입니다. 인생 여정의 일몰은 다가 옵니다. 깨어서 기도하는 삶은 복된 삶입니다. 
요한복음 4:5~30

하나님의 은혜가 이 시간에도 말씀을 통하여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가셔서 수가라고 하는 한 마을을 구원하신 내용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을 사마리아 수가 마을의 어구에 있는 한 우물가로 인도하겠습니다.

사마리아라고 하는 지역은 역사적으로 슬픈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곳입니다.
때는 기원전 721년 앗수르 나라가 북 왕국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점령하고 단일민족인 이스라엘을 혼혈 민족을 만들기 위하여 27,290명을 강제로 앗수르 나라로 끌어갔고 또 앗수르 나라에서 약3만 명의 앗수르 사람을 이스라엘 나라 사마리아에 이주시켜서 혼혈 민족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사마리아는 그 후 남북한이 통일이 되었어도 동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버림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보면 외면을 하고 이스라엘의 남부 예루살렘 지역에서 북부 갈릴리 지역으로 갈려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이 보기 싫어서 동쪽으로 돌아서 요단강을 건너 북으로 올라가 다시 요단강을 건너 갈릴리로 갔습니다. 3,4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0여일 씩 걸려서 갔습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을 상종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살아갈 수 있는 자구책을 강구하게 된 것입니다.
■ 수가성 앞 우물가로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은 누구입니까?
contentxxx.html?idx=42208&code=newsbd&hmidx=9&pn=1&map_en=0
▲ 다리 아래 어울어지 그림이 아름답습니다. 우물가에 나온 여인은 나의 모습이 아닌지 자아를 돌아보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1) 이 연인은 부도덕한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가 아니고 남의 남편과 사는 여인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 남들이 물 긷는 저녁 서늘한 때가 아닌 한낮에 물을 긷게 되었습니다.

(2)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와 무시를 당하면서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왜 같은 사람끼리 살아가면서 남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해야 합니까?
이유는 그만큼 그의 생활과 행동이 남에게 무시 받을만한 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지난주일 우리 성도들은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밖에 버리어 밟힐 뿐이라는 말씀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불신자들에게 밟힙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에게 멸시나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3)이 여인은 향락 주의자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남의 가정을 파괴시키는 여자입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인데 이 여인이 바로 있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사회악이요 기생충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산헤드린의 공회원이나 로마의 관료가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고, 사회에서 소외당한 이 여인이 예수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물가에서 이 여인을 기다렸습니다.
 마치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와 같이 예수님은 이 한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사마리아로 오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contentxxx.html?idx=42208&code=newsbd&hmidx=9&pn=1&map_en=0
▲ 촛대바위의 밤 하늘의 정경이 아름답습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 주님의 말씀이 나의 길이요, 안내자입니다.
예수님이 물을 요구한 것은 다만 갈증을 면하기 위해서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생수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여인은 물 한 그릇 대접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을 얻게 된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요구 사항은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더 풍성한 것, 더 훌륭한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사는 가난한 과부에게 가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시고 또 떡을 좀 달라고 한 것은 앞으로 닥칠 3년 반 동안의 기근을 면케 해 주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은둔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시켜 떡과 물을 날라다 먹이시던 하나님이 왜 갑자가 두로 지방으로 가라고 하셨겠습니까? 바로 사르밧에 살고 있는 한 가난한 과부를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일성수를 요구하시는 것도 더 큰 축복과 더 큰 풍성함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것도 “그리하면 황충을 금하며, 밭의 소산물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술과, 재능과, 지혜와, 지식까지도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여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 베다니 마을의 한 사람은 나귀 한 마리를 정성껏 길렀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주님의 제자들이 와서 달라고 하니 기꺼이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데 무엇인들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도 하나님이 ‘바쳐라’ 고 하시니 지체 없이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번성케 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1) 그런데 수가성의 이 여인은 주님이 물을 달라고 할 때 물은 드리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9절 말씀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 여인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안 하드니 이제는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뒤틀린 이상 성격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신앙이 뒤틀리면 안 됩니다. 바른 생각, 바른 믿음, 바른 사상, 바른 선입관을 갖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러니까 이번에는 대답하기를 “이 물은 깊고 당신은 물 긷는 도구도 없는데 무슨 수로 이 물을 긷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떠먹지 왜 나에게 달라고 하십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파서 우리들이 지금까지 먹고살았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위대합니까? 얼마나 주님을 무시한 말입니까?
주님을 야곱과 비교를 하였습니다. 물길을 그릇도 없이 물을 긷느냐고 무시하였습니다.

(3) 세 번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니까 이 여인은 다시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그 물을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 물 길러 여기 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 얼마나 이기주의요 자기중심적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다면 체면도, 염치도, 신앙도 다 버리고 욕심만 부리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 주님은 이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 오라” 고 하였습니다.
contentxxx.html?idx=42208&code=newsbd&hmidx=9&pn=1&map_en=0
▲ 동해 바다의 바다 물이 정겨움을 더합니다. 풍랑이 일어보 잔잔한 아침 이슬 처럼 아름다움을 변화하는 풍경은 우리 마음을 잔잔한 안신처로 인도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변명하기를 남편이 없다고 이제는 거짓말까지 합니다. 주님께서 “네 남편을 데려 오라” 고 하신 말씀은 그 여인의 가장 잘못된 부분,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 있어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를 먹고 숲속에 숨은 것과 같습니다.
이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지만 주님은 “네가 그렇게 말한 것이 옳다 다섯 명의 남자를 거쳐서 지금의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남편이 없다고 하는 네 말이 옳다” 고 하시니 그제서야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시군요” 하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이 여인은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이와 같은 방탕의 생활을 한 것입니다.
돈만 있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돈 많은 김 서방과도 살아보았고,
권력만 있으면 안 될 일이 없을 줄 알고 권력 있는 권 서방과도 살아 보았습니다.
지식이 있는 남자와 같이 살면 행복할 줄 알고 지식이 많은 지 서방과도 살아보았습니다.
명예만 있으면 될 줄 알고 명예가 높은 명 서방과도 살아보았습니다.
힘세고 체격 좋은 사람을 골라 강 서방과도 살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귀와 장수와 지혜를 얻어서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모든 복을 누렸습니다. 거기다가 외국에서 가장 예쁜 여자들만 수입을 해 다가 일 천 비빈 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1:2-3 말씀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6명 아니 10명을 갈아도 그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병이 났을 때에는 근본적인 치유를 해야 하듯이 이 여인도 근본적인 심령의 치료가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변화되고, 생각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 무더운 여름날 덥다고, 갈증이 난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를 먹으면 입에서는 달콤하고 시원한 것 같으나 갈증은 더 나는 법입니다.
어린아이가 공원에 엄마와 같이 놀러 왔다가 엄마를 잃어버리고 그만 미아가 되었습니다. 미아보호소로 온 이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계속 울기만 합니다.
보호소 직원들이 사탕을 사다 주고 장난감을 주고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어도 이 아이는 계속 울기만 합니다.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엄마를 찾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 오라 고 하신 것도 이 여인의 부도덕한 생활을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기 위한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의 잘못된 생활을 고쳐주고 바로 잡아주고 치료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것을 치료받으려면 주님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병든 곳을 치료받으려면 환부를 의사 앞에 내 보여야 하듯이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죄악에 물든 우리의 심령을 주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고쳐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 주님을 만난 이 여인은 마침내 변화가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contentxxx.html?idx=42208&code=newsbd&hmidx=9&pn=1&map_en=0
▲ 새벽 미명에 찾아오시는 주님, 호텔 전경 비친 빛과 같이 살며시 다가와서 등을 두더리는 주님의 손길을 아름답습니다.
“오! 주님! 당신은 선지자시군요”
(요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이 말씀 한 마디에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로 달려가서 소리를 지릅니다.
이때는 한낮의 시간이라 모두가 뜨거운 햇빛을 피하여 오수(午睡)를 즐기는 시간이라서 동리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큰 소리로 부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나와서 보십시오 나의 행한 모든 것을 그분은 알고 계십니다.” 사실상 자기의 지금까지 행한 일은 자랑스러운 일이 하나도 못됩니다. 부끄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낮잠을 자고 있던 동리 사람들이 나와서 ‘저 여자가 미쳤다’ 고 합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외칩니다.
39절 말씀에 보니까 사마리아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버려진 땅, 외면당하고, 멸시 당한 사마리아의 가장 비천한 한 여인이 주님을 믿고 회개하고 나니까 복음의 불이 당겨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이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샘물을 소유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 수가성의 여인처럼 생수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강물 같은 평화와 기쁨이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contentxxx.html?idx=42208&code=newsbd&hmidx=9&pn=1&map_en=0
▲ 풍랑이 나를 삼키려해도 주님의 품은 아름답습니다. 이제 여인이 만난 주님을 만나, 인생 여정의 안내자로 안내를 받은 여정이 펼쳐지시길 바랍니다.
쓰레기장에서 장미꽃이 피고, 시궁창에서 연꽃이 피고, 가시덤불에서 백합화가 피어나듯이, 버려진 땅, 그리고 외면당하고, 멸시와 천대받는 곳, 사마리아!!
그곳에서도 또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한 여인이 예수를 만났습니다.
만남의 역사는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는 만남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장 천대받고 멸시 당하는 여인일지라도 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 개인이 구원받고 사마리아 온 성에 구원의 물결이 파도쳤습니다. 은혜의 물결이 충만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21:3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 시간에 예수를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의 손을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이루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지금도 예수님은 저 사마리아 수가성 마을 어귀의 우물가에서처럼 오늘 우리들에게 “내게 물을 좀 달라” 고 요구하십니다.
“주님이 쓰신다면, 주님의 요구라면, 나의 재주, 나의 시간, 나의 지혜, 나의 물질, 나의 생명까지도 드리겠나이다”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아 멘>

엄기철기자     bank6268@naver.com

@저작권자 국정일보,경찰일보외 무단전재및 재배포금지
국정일보기자모집(서…
자라섬꽃페스티벌

뉴스 최신글

가평군의회
경찰신문

국정일보

제호 : 국정일보 | 등록번호 : 서울가 00314 | |.편집인/발행인 대표회장 : 권봉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일복
등록일 : 2009년 10월 15일 | 최초 발행일자 : 2009년 10월 15일 | 주소 : [02636] 서울시 동대문구 한천로 2길 107, 9층 (장안동, 형인타워)
대표 (02)2216-0112 | 편집국 (02)2217-1137 | 광고국 (02)2217-1102 | Fax : (02)2217-1138 | e-mail : press1102@hanmail.net
본 사이트의 모든 기사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사용 및 전제를 금합니다.
Copyright© Since 2006 국정일보.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HAZONE.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