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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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대바위의 밤 하늘의 정경이 아름답습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 주님의 말씀이 나의 길이요, 안내자입니다. |
예수님이 물을 요구한 것은 다만 갈증을 면하기 위해서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더 큰 생수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여인은 물 한 그릇 대접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을 얻게 된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요구 사항은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더 풍성한 것, 더 훌륭한 것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사는 가난한 과부에게 가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시고 또 떡을 좀 달라고 한 것은 앞으로 닥칠 3년 반 동안의 기근을 면케 해 주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릿 시냇가에 은둔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시켜 떡과 물을 날라다 먹이시던 하나님이 왜 갑자가 두로 지방으로 가라고 하셨겠습니까? 바로 사르밧에 살고 있는 한 가난한 과부를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일성수를 요구하시는 것도 더 큰 축복과 더 큰 풍성함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신 것도 “그리하면 황충을 금하며, 밭의 소산물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을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술과, 재능과, 지혜와, 지식까지도 드리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여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 베다니 마을의 한 사람은 나귀 한 마리를 정성껏 길렀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주님의 제자들이 와서 달라고 하니 기꺼이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데 무엇인들 드리지 못하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도 하나님이 ‘바쳐라’ 고 하시니 지체 없이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은 자손의 번성케 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1) 그런데 수가성의 이 여인은 주님이 물을 달라고 할 때 물은 드리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9절 말씀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 여인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안 하드니 이제는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뒤틀린 이상 성격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나의 생각, 나의 신앙이 뒤틀리면 안 됩니다. 바른 생각, 바른 믿음, 바른 사상, 바른 선입관을 갖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축복을 내려주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2)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러니까 이번에는 대답하기를 “이 물은 깊고 당신은 물 긷는 도구도 없는데 무슨 수로 이 물을 긷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떠먹지 왜 나에게 달라고 하십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파서 우리들이 지금까지 먹고살았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위대합니까? 얼마나 주님을 무시한 말입니까?
주님을 야곱과 비교를 하였습니다. 물길을 그릇도 없이 물을 긷느냐고 무시하였습니다.
(3) 세 번째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니까 이 여인은 다시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그 물을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 물 길러 여기 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 얼마나 이기주의요 자기중심적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다면 체면도, 염치도, 신앙도 다 버리고 욕심만 부리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