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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향년 100세로 별세
한국군 최초 대장···다부동 전투승리 낙동강전선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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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0-07-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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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봉길 기자 = 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 4분께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일제강점기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 뒤 6·25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휴전회담 한국 대표, 주중한국대사,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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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와 38선 돌파 작전 등 결정적인 전투를 지휘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한국군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세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옛날에는 임금만이 대장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화국이라서 신하도 대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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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다부동 전투 때 도망치는 장병들을 모아놓고 “내가 앞장서 싸우겠다. 만약 내가 후퇴하면 나를 먼저 쏘라”며 배수의 진을 쳐 후퇴를 막았던 일화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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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겪은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50년 여름 1사단장으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라고 밝힌 바 있다. 두 달 가까이 부하 장병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고,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았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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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 역전돼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할 때는 “나라의 자존심이 걸렸다”며 행군을 강행해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해 태극기를 꽂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평양에 입성했을 때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다”며 “1사단장으로 한미 장병 1만5천여명을 지휘하며 고향(평남 강서)을 탈환했다”고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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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장군이 6·25전쟁 당시 겪은 일화 등은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에 육성 보관되어 있다. 태극무공훈장(2회),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미국 은성무공훈장, 캐나다 무공훈장 등을 비롯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 ‘2010 밴 플리트 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전쟁一千日’(1988), ‘軍과 나’(1989), ‘실록 지리산’(1992), ‘한국전쟁Ⅰ,Ⅱ,Ⅲ’(2000), 회고록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2010),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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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되며, 발인은 15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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