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특허 지키려다 삼성·SK 설계도 털릴 판… 지재처, 방패 없이 ‘K-디스커버리’ 무리한 강행
최수진 의원 “국가 핵심기술 노리는 해외 소송금융 쇄도… 영업비밀 보호장치 마련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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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26-10-12 22:12본문
해외 피소 558건 중 대기업 81.2% 집중… 삼성·SK 노리는 中 자본 등 특허괴물 위협 심각
지재처, 기업 부담 실증 추계 없이 2019년 낡은 데이터(건당 약 600만 원 증가)만 들이밀어…관리비용은 ‘추후 연구’
법무부 “재판청구권 중대한 제한”… 법원행정처 “불응 땐 패소판결 등 실효적 제재 필요”

국민의힘 최수진 국회의원.
서울 = [국정일보 권봉길 기자] = 정부가 추진 중인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확대 논의와 관련해, 자칫 반도체·통신 등 국가 핵심 산업의 설계·공정 정보가 외국 자본의 합법적 사냥감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가 나왔다. 무기(조사 권한)는 막강해지는데, 기밀 유출을 막을 방패(안전장치)는 턱없이 부실한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란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가 가진 서류와 증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침해 의심 기업의 공장이나 사무실에 출입해 직접 샅샅이 조사를 벌일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제도다. 특허를 뺏긴 피해 기업이 가해 기업의 침해를 입증하기 쉽도록 돕겠다는 좋은 취지에서 지식재산처가 일반 소송으로의 전면 도입을 강력히 추진 중이다.
특히 하도급·수탁 관계에 한정한 증거개시제도를 담은 「상생협력법」이 2028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고, 기밀 유출을 막을 유일한 방어막인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을 명문화한 「변호사법」 개정안은 올해 1월에야 국회를 통과해 내년(2027년) 2월 시행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방패가 실무 현장에 채 안착하기도 전에 기업들을 사지로 모는 권한부터 쥐여주는 것은 국부 유출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최수진 국회의원(국민의힘)이 지식재산처, 법무부, 법원행정처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보호장치의 실효성과 국내 기업의 방어비용에 대한 주무 부처의 실증적 분석에 심각한 구멍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수진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기술기업(삼성, SK하이닉스 등)을 공격한 해외 NPE(비제조 특허 전문회사)의 배후에 중국계 소송 자금이 개입하거나, 중국 기업의 특허가 기획 소송에 활용되고, 심지어 유출된 기밀문서가 중국 로펌으로 흘러가는 등 중국과 연계된 기술 안보 위협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실제로 최근 미국 특허관리전문회사 ‘MonolithIC 3D Inc.,(미국-특허관리전문회사)’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전 제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수입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지식재산처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7월까지 국내 기업의 해외 특허 피소는 558건(미국 507건)이며, 이 중 대기업 대상이 453건(81.2%)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2024년 미국 내 국내 기업 피소 97건 중 78건(80.4%)은 비제조 특허전문회사(NPE, 일명 특허괴물)가 제기한 소송이었다.
대기업을 노린 소송의 배후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외국 자본이 깊숙이 얽혀 있다. 삼성전자 등을 상대로 제기된 ‘스테이턴 테키야(미국-특허관리전문회사)’ 소송 4건의 배후에는 중국 선전 소재 ‘퍼플바인IP(PurpleVine IP Group , 중국-특허컨설팅업체)’의 자금 제공이 있었고, 美 법원은 소송 중 기밀자료가 부정 취득·활용됐다며 원고의 ‘부정 항변(Unclean hands/스스로 불법이나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자의 구제 청구를 법원이 배척하는 원칙)’을 인정했다.
또한, G+ Communications(미국-특허관리전문회사)는 중국 ZTE(중국-통신장비업체)로부터 매입한 5G 표준특허로 기획 소송을 벌였으나 소송 자금 조달원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쳤고, SK하이닉스를 공격한 신생 NPE ‘AMT(미국-특허관리전문회사)’는 모회사가 실소유주를 숨긴 페이퍼컴퍼니로 드러나 우회 자본 개입 의혹마저 낳고 있다.
엄격한 미국 소송에서도 비밀 유지는 번번이 뚫리고 있다. 홍콩 반도체기업 Silicon Motion Technology Corporation (SIMO) 사건에서는 美 법원의 보호명령이 있었음에도 상대방의 비밀문서 4건이 중국 소송 담당 변호사 4명에게 무단 전달되었고, 2년 뒤에야 법원의 사후 제재(4만 달러) 조치에 그쳤다.
공장에 직접 들어가 자료를 뒤지는 제도가 방어막 없이 섣불리 도입되면 소송금융을 매개로 우리 반도체와 통신 등 첨단 산업 정보가 통째로 털릴 수 있음을 시사하는 뼈아픈 대목이다.
사법부를 관장하는 부처들도 절차적 보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발의안의 법정 외 진술녹취 제도에 대해 “증명력 판단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이 없는 장소에서 행해져 헌법상 재판청구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자 민사소송의 대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며 공식적으로 신중 검토를 요청했다.
진술녹취 제도 도입 취지에 찬성하는 법원행정처조차,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명령 불응 시 패소 판결, 소송비용 부담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최수진 의원실은 이를 두고 “자료 제출의 강제력과 처벌 수위가 높아질수록, 우리 기업의 영업비밀을 지킬 방어 장치 역시 시행 전에 그만큼 더 견고하게 마련되어야 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제도 확대 시 기업이 짊어질 비용 부담에 대한 실증 데이터도 턱없이 부족하다. 특허괴물들은 소송에서 이기는 것보다 방어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점을 악용해 헐값 합의금을 강요한다. 디스커버리가 일상화된 미국의 경우, 특정 분쟁가액 구간에서 피고 측 방어비용 중앙값이 30만~150만 달러(약 4.2억~21억 원)에 달할 정도로 고비용 구조를 띠고 있다.
반면, 지식재산처는 한국형 제도 도입 시 소송비용 증가에 대해 “전문가 1인 조사 기준 건당 약 600만 원, 시장 전체로 약 6억 원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2019년의 제한적이고 낡은 추산치만 내놓고 있다.
실제 제도가 전면 도입될 경우 대·중소기업들이 각각 짊어져야 할 시스템 및 영업비밀 관리 비용에 대한 최신 실증 추계는 전무하며, 지재처는 국정감사 답변을 통해 “영업비밀 관리비용 실증 추계는 추후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무책임한 답변을 내놨다.
최수진 의원은 “증거 편재로 억울함을 겪는 특허권자를 돕고 중소기업을 구제하겠다는 취지에는 적극 공감한다”면서도, “한국 반도체의 심장인 HBM 기술까지 해외 특허괴물의 타겟이 된 엄중한 상황에서, 실체 불분명한 외국 자본이 우리 안방의 자료에 무방비로 접근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질타했다.
이어 최 의원은 “올해 1월 국회가 변호사법을 개정해 비밀유지권(ACP) 제도를 통과시켰지만 내년 2월에나 시행되며 실무 안착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식재산처는 국내 기업 비용 부담 추계를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소송자금 및 실질 권리자 공시 의무화, 목적 외 사용 금지와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 등 3중 잠금장치를 시행 전에 확실히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2028년 시행되는 상생협력법의 현장 성과를 우선 검증한 뒤 특허법 전면 확대를 신중히 논의하는 것이 순리”라고 강조했다.
서울 = [국정일보 권봉길 기자] kwon1500@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