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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초심은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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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 2019-11-1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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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일관(初志一貫)'은 처음에 먹은 마음을 한결같이 지닌다는 뜻이고, '초심불망(初心不忘)'은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초심은 지키기가 어렵고 초심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이광수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원래는 어렵지 않은 집안이었으나 조부의 방탕과 부친의 무능으로 몰락해 가고 있다가 11세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여동생은 조부가 맡아 길렀으나 이광수는 여기저기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동학의 대접주였던 서병달의 눈에 띄어 천도교에서 주선한 일본 유학생에 선발되어 안창호를 만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런 그는 왜 변절하여 친일파가 되었을까. 그 원인은 여자 문제라 볼 수 있다. 1908년 일본에서 잠시 귀국한 이광수는 할아버지의 간청에 못 이겨 백혜순 이라는 여자와 사랑 없는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1917년 무리해서 글을 쓰다가 병이 나서 입원한 일본의 병원에서 허영숙이란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의 극진한 간호를 받고 병이 나았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사랑은 북경으로 사랑의 도피행을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광수가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있을 때 허영숙이 상해까지 찾아와 귀국을 종용해 그 생활의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이다. 허영숙의 견해에 귀국한 이광수는 본처 백혜숙과 합의이혼하고 허영숙과 단란한 가정을 꾸민 상황에서 다시 독립투사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에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자 인생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일신상의 안일을 추구하게 되었다.

, 19376월부터 19383월에 걸쳐 일제가 수양동우회에 관련된 181명의 지식인들을 검거한 사건. 당시 재경성기독교청년면려회가 각 지부에 기독교인으로서 독립에 이바지하는 방법을 담은 문서를 발송한 것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안창호를 비롯해 이광수, 김성업 등 동우회의 지역 지부 대부분의 회원들이 검거되었고, 안창호는 19383월에 재판에 회부되기 전에 죽었고, 최윤세, 이기윤은 고문 끝에 감옥에서 사망했고, 김성업은 불구자가 되었다.

도산 안창호의 연설에 큰 감동을 받아 후일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이광수의 정신적 지주안창호의 죽음으로 조선의 앞날이 절망뿐이라는 생각에 친일로 돌아섰던 것이다.

반면, 홍명희는 명망있는 풍산 홍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 홍범식은 금산 군수를 하다가 한일합방을 맞았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던 그의 부친은 한일합방이 되자 제일 먼저 자결할 정도로 지조 있는 인물이었다. 부친 홍범식은 나라를 되찾고 친일하지 말 것을 유서로 남겼다. 홈명희 역시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기에 독립투쟁에 몸을 바쳤다.

홍명희는 당시 풍습에 따라 13세에 자신보다 3살 연상인 민씨의 처자와 결혼하여 16새에 장남 기문을 낳았다. 그의 부친이 일찍 죽고 자신도 투옥당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생계가 어려워 계급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의 투옥은 민족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빠지게 되었다.

홍명희의 대표작인 <임꺽정>은 반봉건적인 천민계급층을 내세워 계급을 타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광수의 작품은 유교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성격을 비판하면서 남녀의 자유로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해방 이후 이광수는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에 친일파로 낙인 찍혀 검거 되었다. 이광수는 끝까지 자신의 친일은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항변하였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인민군에 잡혀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홍명희는 끝까지 남북통일을 외치고 1947년 김구와 같이 평양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지내다 196881세로 생을 마쳤다.

이광수와 홍명희는 일본 동경에서 처음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유학한 이들은 호암 문일평, 육당 최남선 등과 함께 문학공부를 하였다.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두 작가 홍명희 이광수 또한 한일합방이라는 치욕적인 일본의 압제속에서 살아간 인물이다. 한사람은 친일, 한사람은 반일의 인물로 남았다.

문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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